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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템플 그랜딘의 비주얼 씽킹] 나의 지구가 넓어지는 시간
    F3 책책책 2023. 10. 4.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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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적 편견을 넘어선 사람

     책은 늘 너무 많은 것을 준다. 
    전혀 접점이 없었던 템플 그랜딘을 그녀의 최신작인  <템플 그랜딘의 비주얼 씽킹>을 통해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자폐증을 가지고 있지만, 동물 행동에 대한 전문가이다. 근래 한국에서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인기를 끌면서 자폐 스펙트럼인 사람들에 대해서 재조명을 하는 계기가 있었는데, 항간에는 템플 그래딘이 이야기의 모델이었다는 말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번에 접하게 된 <비주얼 씽킹> 은 자신의 인생에 대한 책*이라기 보다 '시각적 사고'를 가진 사람의 관점을 전해주는 책이었다. 모든 사람은 자기 안의 이야기에서부터 말하기 시작한다고 생각하는데, 벌써 개인을 넘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시각적 사고'로 보는 세상을 알려주기 위해 활동하고 책도 쓰고 있는 그녀는 이미 사회적 편견을 넘어선 대단히 강한 사람이라고 느꼈다. 

    *참고) 그녀가 시각적 사고를 가지고 언어를 다루는 것이 쉽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이 듦에도 상당히 많은 논문과 책을 썼다. 
    <어느 자폐인 이야기>, <나는 그림으로 생각한다>, <동물과의 대화> 등의 다른 책까지 읽으면 더 종합적으로 그녀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언어적 사고 vs. 시각적 사고

     

     책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단연 '시각적 사고자'의 눈으로 본 세상이 어떤지 간접 체험하는 것이었다. 템플 그랜딘에 대해서 잘 몰랐기 때문에 동명의 영화 '템플 그랜딘 (2010)' 에 대해 찾아보았고 주요 장면을 보여주는 유투브 리뷰 영상도 보았다. 더불어서 이전 그녀의 저서에 대한 사람들의 감상도 찾아보았다. 그 중에서도 아래의 인용구가 템플 그랜딘이 느끼는 시각적 사고를 이해를 높여주었다.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달리 나는 시각적이고 구체적인 영상에서 일반적인 개념으로 사고가 이동한다.
    이를테면 개라는 개념은 내가 지금까지 본 모든 개와 복잡하게 연관되어있다.
    내가 지금까지 본 개 전부를 사진 목록으로 만들어 보관하는 것과 같다.
    이 목록은 비디오 도서관에 사례를 추가하면서 계속 늘어난다.
    <나는 그림으로 생각한다> 중에서

     

    하나의 사진처럼 그림을 통째로 기억한다는 의미가 어느 정도 인지 와 닿지 않았는데, 시각적 사고는 '마치 아무 것도 입력되지 않은  AI의 첫 학습' 과 같이 느껴졌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한번 개념 (eg. 개) 을 인지하고 나면, 쉽게 분류화가 가능한 것과 달리 기계에게 개념을 인지 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데이터를 입력하여 개별적인 개체에 따라 다를 수 있는 편차를 인지시켜야 정확하게 개념에 일치하게 구분해낸다고 한다. (eg. 강아지와 흡사한 이미지를 보여주는 고양이-흔히 개냥이(?), 강아지 인형) 보편적인 언어 기반 사고에서는 답답할 수 있는 시각적 사고 관점이지만, 이미 발전한 AI를 미루어 짐작해볼 때 많은 사례를 학습할 수록, 특정 분야에 한정하여 깊게 학습할수록 얼마나 특별한 수준에 도달하여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 미루어 짐작이 가능하다.
     
    즉, 나를 비롯한 일부 사물 시각형 인간은 정보를 처리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정보를 처리하기 위해 먼저 사실적인 그림 데이터에 접근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려면 머릿속에서 구글 검색에 해당하는 일을 먼저 수행해야 한다. ... (중략) ... 내 사고방식은 느리지만 정확하다. 빠른 사고가 사회생활에서는 유리하겠지만 예술 작품이나 기계 장치를 만들 때는 느리고 신중한 사고가 더 유용하다. (p. 51)
     
    일독에는 지나쳤었는데, 서평을 쓰고 노트 정리하면서 태그를 달아 놓은 쪽들을 다시 돌아보다 발견한 문구이다. 가진 경험 내에서 이해해보려고 했던 '시각적 사고'에 대한 유추가 옳았던 것 같아서 적잖이 뿌듯했다.
     
     
     
     
     

    사물 시각적 사고 vs.  공간 시각적 사고

     

     
     
     
    읽을 수록 사물 시각적 사고자일 확률은 현저히 낮아지고 있었다. 그럼 혹시 공간 시각적 사고는 어떨까?
    전공한 분야가 있다보니, 공간 시각적 사고자일지도 모르지란 생각은 들면서도 대수학이란 소리를 들으니 고개가 절로 저어진다. 추상적 개념을 이해한다는데, 물론 볼 수 없는 원자-분자의 오비탈에 전자 스핀을 배우기야 했지만 억지로라도 모식도나 도표화 하면서 공부해야 마음이 편했던 것 같아서... 책에서 사고 유형에 대한 분류를 메모하면서 읽어보아도 '난 아닌 것 같아. '라는 헛웃음을 살짝 지었다. 어느 쪽이든 시각적 사고 스펙트럼에서 멀었다면 더욱 노력으로 공부한 나를 애썼다고 달래기로 했다. (웁스!! 템플 그랜딘이 교육에서 중요하다고 말하는 조기노출과 멘토링 중... 둘 다 20대까지 제대로 겪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 이제라도 다른 세상을 아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템플 그랜딘은 스스로 동물과 같은 사물 시각적 사고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동물과 연관성이 높은 삶을 꾸려왔다고 느끼는 것 같다. 그녀가 진정 대단하다고 느끼는 점은 자신의 세계 안에서 있는 것이 편안할 수도 있는데도 불구하고, 동물 그리고 인간의 삶에 모두 도울 점을 찾아 직접 개선하려는 노력을 하는 사람이란 것이다. 이 책에 단지 시각적 사고자들의 능력의 가능성과 빛을 발할 수 있는 분야에 대한 설명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교육의 분야에서 언어적 사고력이 낮은 사람들이 얼마나 배제되고 있는지 주장하는 내용이 미래까지 내다보고 있다는 점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현재 7살인 아들도 나이답게 어느 정도 시각적 사고로 새로운 곳에 가면 그곳의 모든 이미지를 담기에 바쁘거나, 매일 보는 벽지의 패턴마저도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몇 년 후에는 자신의 스펙트럼에 맞는 사고 방향으로 더 성장할 수 있도록 잘 이끌어 줄 수 있는 부모로 같이 성장해야 되겠다.
     
     

    모호한 나의 정체성은 어디에 있을까?

     

    처음 책장을 넘길 때는 시각적 사고에 대한 인지가 낮아서 어렵다고만 생각했는데, 그저 정체성이 모호한 것 같기도 하다. 책에서 시각적 사고자인가 아닌가 판단해 볼 수 있도록 몇 가지 테스트를 언급한다. 템플 그랜딘이 제안하는 이케아 테스트에서는 마치 시각 성향이 강한 사람인 것 같다. 하지만 실버만이 개발한 '시각 공간적 식별자'의 18개의 질문(p.32) 에서 9개로 다소 애매한 위치에 있다. (10가지 이상 이면 시각 공간적 학습자일 가능성이 높다. ) 이 또한 스펙트럼적인 개념이라 10개가 넘는다고 해서 무조건 시각 공간적 학습자라고 보는 것은 아니지만, 독서하는 동안 다소 헷갈리는기분이 들었다. 네 맛도 내 맛도 아닌, 밍숭맹숭한 사람인 것 같은 어정쩡함을 어찌 하면 좋은 것인가. 사회 경제적 배경과 IQ가 매우 다른 4,5,6학년 학생들 750명대상에 대한 결과를 미루어볼 때, 약45%의 혼합형이 - 더 큰 모집단에 적용했을 때도 유사하게 - 가장 많이 나타날 것이라고 유추해볼 때 사실 그 어정쩡함이 평균이라는 속성에 포함된다고 이해해야 할 것 같다. 조금 특출난 그룹에 포함되어 보고 싶었던 아쉬움이 드는 것도, 평균이라서 엄청 즐거운 기분이 들지 않는 것을 보면서 이 또한 '시각적 사고자'에 대해 몰랐으면 느끼지도 못했을 감정이란 생각에 우쭐해주기로 했다. 책 내용을 읽을 수록 시각적 사고자에 대한 호기심이 늘어나는 것만으로도 ... 보다 더 시각적 사고를 경험해 보고 싶은 언어적, '청각 순차적' 사고 우위인 스펙트럼 상에 있다고 일단락 지어본다.

     

    p.32) 실버만 - '시각 공간적 식별자'

     

    나의 지구가 넓어지는 시간

     

     지구가 태어난 46억년 이래로 무수한 생명체의 보금자리가 되어주었지만, 한 개인이 지구를 온전히 체험하기란 인간의 수명은 너무 짧다. 그렇다고 해서 지구 곳곳을 직접 여행하는 체험의 방식이 능사는 아니다. 결국 시각이 넓어져야 한다. 마치 뿌옇게 존재하되 어떤 곳인지 몰랐던 지구의 한 조각을 되찾은 기분이다. 이 말을 쓰면서 시각적으로 하나의 행성으로 알고 있는 지구가 아닌 '나의 지구'의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아... 정말 너무 시각적 사고를 생생하게 경험해보고 싶다아~~!! )    

     책을 집어들기 까지 템플 그랜딘은 누구인지도 전혀 몰랐던 사람이었다. (부끄러운 사실이지만) 자폐증이 있는 사람을 생각지 못하게 만났을 때 일대일로 이야기할 기회가 있다면 대화를 잘 이끌어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책을 통해서 그녀가 먼저 해온 경험과 사유를 나누어주면서 생각지 못했던 점들을 알게 되니 알고 있었던 사실도 신선하게 느껴질 뿐 아니라 공감과 동시에 영감을 받는 기분을 느꼈다. 예를 들면, 그녀는 대학이나 정부 기관 등에 강연하러 갔을 때 발견하게 되는 끼리끼리나  장애인끼리만 어울리는 '사일로 심리 (silo mentality) (p.137)'를 경계한다. 사람들은 너무 좋아하지만 새로 만난 사람에게 단단한 벽을 쌓아둔 '끼리끼리'가 싫어서 특정 경우에 자리를 피하기도 하는 편이라 이 부분에서 크게 공감되었다. 그리고 특정 실험들의 프로토콜 상에 아주 작은 요소가 다르게 구현됨에 따라 결과가 재현되지 않는 일을 업무 중에 많이 발견하게 되는데, 이럴 때 사물 시각자가 빠르게 그 부분을 잡아낼 수 있다는 점에서 정말 탄복했다. (p258~262) 그들의 사고는 엄청 느린 과정을 거쳐서 형성되지만, 다른 유형의 사고자 입장에서는 엄청 직관에 가까운 속도로 여겨질 만한 지점이다. 개인적으로 실험 재현성에 대해 관심이 많은데, 그런 일에는 사물 시각적 사고자가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어서 유익했다. 일본 후쿠시마 지진의 경우에도 바로 곁에 있어 지진이 너무 잦은 나라라는 걸 알았는데도 쓰나미에 대한 위험은 생각을 못해봤었다. 문제는 원전의 설계자들도 옆 나라 한 국민 수준으로 내진 설계에 집중하고 홍수 위험은 고려 못한 것이 사고의 여파를 키웠다는 사실에 놀랐다. 사고 당시에 엄청 놀란 마음으로 열심히 뉴스를 찾아보았지만 방사능으로 체르노빌처럼 일본 일대가 황폐해지는 건 아닌지 겁만 벅었던 것 같다. 이 책에서 읽은 원자로와 멜트다운에 대해 명료한 설명들로 그 당시에 어떤 일이 일어난 건지 오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p.285~293) 시각적 사고에 대해 무지해서 ㅡ 읽기 전에 어떤 기대도 추측도 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오히려 책의 내용을 있는 그대로 흡수하니 정말 예상치 못하게 너무 좋았던 책이었다. 


    같이 책을 읽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지구가 한 조각씩 넓어져서 모인 조각으로 하나된 지구에서 다시 만나는 상상을 해본다. 
    상상만으로 얼마나 짜릿한 일인지. 이것도 나의 퓨처셀프의 일부일까??? 
    독서는 늘 너무 많은 것을 깨닫게 해준다, 정말 아낌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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