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서평 [고통의 비밀] 도대체 전 왜 계속 아픈 건가요??
    F3 책책책 2023. 8. 11. 07:25
    반응형

     

     
     
    6개월이면 좋아진다던 거짓말
     
     
    태어나서 한 번도 안 아파본 사람도 없고 특히 출산 전후로는 누구나 몸이 아프기 마련이다. 문제는 제왕절개를 하면 6개월은 얌전히 회복해야 한다는 말만 철석 같이 믿었다는 것이다. 출산 후 9개월이 지나도록 꼬리뼈는 뱃속에 여전히 아이를 품은 듯이 고통스러웠다. 주변 사람들은 그러니까 산후조리를 잘해야 한다며 걱정을 해주고는 했다. 그 말들을 같이 들었건만 눈치 없는 꼬리뼈는 제자리로 돌아올 줄 몰랐다. 엄청 건강한 적은 없어도 크게 아픈 적도 없었기에 진통제를 먹어 가라앉힐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를 돌보면서 계속 이런 상태면 드라마나 영화에서 약을 털어 넣던 캐릭터들처럼 되는 거 아닐까라는 끔찍한 상상이 들었다.
     
    임신 초기부터 따지면 1년 반 가까이 나아질 듯 끊어질 듯 사라지지 않았던 통증이었기 때문에 완벽한 만성 통증을 개인적인 특징으로 한 줄 추가할 절호의 기회 같았다. 그렇게 통증과 친구가 되어버릴까도 싶었지만, 아이와의 한 번 뿐인 만남의 시기에 나쁜 추억만 남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다시 움직이게 되었다.
     
     
    지키기 위한 신호, 통증
     
    저자이자 의사인 몬티 라이먼은 <고통의 비밀>을 비단 출산이 아니더라도 여러 만성질환에서 고통받는 이들에게 통증에서 오는 고통의 이유를 찾는 노력만큼, 만성 통증에 대한 편견을 지우고 - 통증의 본래 모습을 바라보기를 권한다. 
     
    이 책을 단 한 줄로 전해야 한다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통증의 본질은 우리를 해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우리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
    '통증은 뇌에서 생성되고 우리를 보호하기 위한 반응이고 조직 손상에 대한 정보가 아니다. ' (277쪽)
    짧지만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내용이다. 통증을 겪으면 어딘가 몸에 문제가 생겼을 것이라고만 단정 짓기 일쑤다. 하지만 그 신호는 손상 조직이 아닌 뇌가 보내는 것이라는 거 이해하기만 해도 완전히 상황이 달라진다.
     
    만성통증은 전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20% 수준의 비율로 겪고 있는 엄청난 병이지만, 빅파마들이 만성 통증의 치료제를 개발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전혀 없다. 뇌질환이나 암처럼 치명적이지 않다고 하더라도 저 정도 파이면 충분히 시장이 큰 것 같다. 만성통증이 2019년 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안에서야 개별 질병으로 인정받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10장) 또한, 통증 완화를 위한 진통제, 오피오이드 등의 처방은 이미 (일부지만) 과도하게 이루어지는 편이기 때문에 제약사들에게 구미가 당기는 부분이 없었을 성싶다.
     
    진짜 문제는 얼마 전까지는 증상으로만 분류된 그 질병은 엄청난 증가 추세를 타고 있다는 것이다. 노화, 과식, 흡연, 수면 장애 등 현대인의 스트레스를 높일 만한 모든 요소들은 점점 만성 통증을 강화시키는 악순환에 빠지게 한다. 수렵/채집/사냥으로 자급자족 하던 시기의 인간의 뇌나 현재의 뇌는 큰 발전이 없다. 현재는 그때보다 보편적으로 더 안전하고 죽을지도 모르는 위험한 순간이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뇌의 편도체는 작은 스트레스에도 비상벨을 울리면서 면역계에게 총공격 지시를 내리는 과잉 반응을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난 이런 질환들하고 멀어서'라고 관심이 없었던 독자도 눈 번쩍 뜨고 꼼꼼히 읽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만성통증은 극히 현대적이고, 점차 강력해지는 질병 중 하나다.
     
    여러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니 극단적으로 통증이 없는 - 이상적인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것도 정답은 결코 될 수 없다. 선천성 무통각증 (3장)을 가진 신기한 소년들의 이야기는 가끔 들어보기는 했지만, 그 삶이 어떨지 그려보지 못했었다. 그들처럼 촉각이나 차갑고 뜨거운 것은 느끼는 사람들이나, 정신적 통증조차 없는 듯한 사람들의 대화에서 무언가가 잃어버린 듯한 느낌을 받았다. 자신을 온전히 지킬 신호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란 건 묘하게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는 듯한 무모한 느낌이 느껴졌다. 실제로 보통 사람보다 위험천만하겠지만 그들은 그냥 '통증'을 모르는 듯했다. 그래서일까, 덜 느끼는 그들을 보면서 인간적이란 단어 안에 통증이 포함된단 생각이 들었다.
     
    일상에서 흔히 쓰는 '플라스틱 plastic'은 마치 그 자체가 소재의 이름인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지만 사실 성형하는 대로 가공이 가능한 '가소성' 있는 소재란 뜻이다. 뇌 회로는 활용하기에 따라 연결이 늘어나거나 줄어드는 신경가소성 (neuro-plasticity)을 가지고 있다. 뇌는 신체를 보호를 위한 일이라면 아주 극도로 예민하기 때문에 실제 부상은 완치되었더라도 나았어도 뇌가 높은 수준의 통증을 예상하면 점차 통증을 많이 생성하게 된다. 인간의 뇌의 '확증 편향'은 통증에 있어서도 피해 갈 수 없는 속임수에 빠지고 만다. 통증이 실재하는 것은 확실하지만 사람의 뇌가 만들어 내는 통증의 '크기'는 경우에 따라 아주 제멋대로 늘어나거나 줄어들  수 있는 고무줄과 같이 가변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통증의 본질과 뇌의 속성을 이해하고 수용하면 통증은 달라질 수 있다. (참고 11장)
     
     
    다시 개인적인 경험으로 돌아가면, 큰맘 먹고 PT를 받았다.
    '출산' '육아'라는 상황을 배제하고, 냉정히 몸 상태를 진단해 줄 전문가와 운동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설정 방법을 찾으려고 했다. PT를 시작하면서 복근은 좀 없긴 해도 보통이지 않았나 했던 몸이 실은 엉망진창으로 뒤틀려있다는 걸 알았다. 마치  폼페이에서 화산재와 용암을 피해 도망가던 사람들 중 한 명 같았다.  한쪽 골반은 앞으로 나와있고 반대편은 내려가 있고 견갑골은 거의 접혀있고 복근은 가뜩이나 없는데 출산으로 해제된 지 오래였다. 그럼에도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다시 가졌기에 약 6개월간 운동을 지속할 수 있었고, 현재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꼬리뼈와 의좋게 지내고 있는 편이다.
     
    그때 이 책을 만나기 전이었기 때문에 '역시 비싼 PT가 값을 하네~', '꾸준히 운동하더니 좋아졌네'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에게 일어난 변화가 그보다 더 나은 것이란 설명을 할 수 없었다. 저자가 책의 말미에 언급하는 만성통증 완화의 방법으로 '변화하기, 시각화하기, 교육하기' 크게 세 가지를 제안한다. 912장) 딱 맞진 않겠지만 모두 조금씩 시도했기에 통증이 없어졌다고 본다. 무엇보다 운동에 더불어 수면 개선, 호흡 훈련, 식단 조절을 하는 생활 전반에 좋은 습관이 자리 잡았다. (책처럼 뇌 사진을 본 건 아니지만) 수시로 교정한 바른 자세를 거울로 확인하면서 운동을 하니 정확한 자세를 더 오래 유지할 수 있었다. 자세가 틀어져 있었기에 PT 이전에 혼자 운동을 했던 것이 왜 전혀 효과를 내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몸과 근육의 메커니즘에 대한 설명과 함께 산후 스트레칭을 알려주는 운동 코치들의 조언과 영상을 찾아보았다. 본 내용을 PT 선생님에게도 다시 질문해가며 적극적으로 교정했기에 나의 체형 문제에 한해서지만 꽤 많이 알게 되었다. 이제는 피곤한 날 통증이 오면 배웠던 것을 다시 활용해볼 수 있는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내 몸에 대해 기록하고 대화하자
     
     
    아이들의 경우 처음에는 말 못 해서 울음으로 표현하지만, 말이 트인 다음에는 어른들만큼 경험해 보지 않아 낯선 아픔을 잘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어른이라 해도 몸에 대한 메타인지가 낮다면 증상을 전하는데 특별히 유능해지지는 않는다. 아프더라도 감정적으로 통증을 대하기 보다 객관적으로 자신의 몸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가져야 통증과 대화가 가능해진다.  예전에는 자주 불편한 곳이 있으면 투덜거리는 것으로 끝났는데, 요즘은 다이어리에 하루를 복기할 때 어떤 순간에 몸이 편안했고, 어디가 불편했는지도 써두기도 한다. 푸념하기 위해서가 아닌, 어떤 상황에서 또는 얼마나 특정 작업을 했을 때 몸에서 버겁다는 신호를 보내는지 느끼기 위해서 기록을 모아가고 있다.
     
    갑자기 제왕절개 수술 후에 땀 뻘뻘 흘리면서 밤을 지새웠던 첫날이 기억난다. 간호사 선생님이 머튼을 누르면 진통제가 들어간다고 이야기해주었건만 까맣게 잊고 진통만큼 아픈데 가위눌린 듯 말도 나오지 않아 누굴 부르지도 못했던 밤이었다. 책에서는 주로 과도한 통증들을 다루지만, 반대로 아픔을 잘 표현을 못 하는 성향도 그 못지않게 문제일 수 있다. 아플 때는 적절히 치료나 처방을 쓸 줄 알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도 꼬리뼈와 진솔한 대화를 이어가야겠다.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