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열심히 읽었다 생각했는데 가끔 나의 감상이 잘 남지 않는 경우가 있다. 분명 구절 하나하나에서 '이런 생각을 하다니...' 라며 감탄하지만, 어쩐지 덮고 나면 없던 일 같이 깔끔히 잊어버린 기분이었다. 저자 톰 올리버는 '자아 환상'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했는데, 유독 책을 이해하고 싶다는 집착하며 신기루를 잡으려 허우적대며 읽었던 책이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였다.
독립적인 자아라는 환상
우리에게는 타파해야 할 커다란 미신이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우리가 주관적인 우주의 중심에서 독립된 자아로 존재한다는 믿음이다. 우리는 각자가 세상에서 독립적인 개인으로 자율적으로 행동한다고 느낀다. 우리 주위의 변하는 세상 속에서 중심점 역할을 하는 내적 자아가 있다고 믿는다. (p. 16)
본 내용에 들어가기도 전에 저자는 '자아'를 처참하게 부셔준다. 괜한 생각에 반박해보고 싶지만, 무심코 열어본 카톡 창에는 다양한 사람이 서로 전하는 소식들에 반응하는 내가 보인다. 그 중에서 어떤 이야기에는 기존에 알던 것에 살을 붙여서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전하기도 한다. 유독 습관적으로 '생각한다'를 많이 쓰는 내가 실제로는 '독립적인 한 사람으로 생각한 것이 무엇인가?'라는 의문과 의구심이 들었다. 여러 사람들의 말, 곳곳에서 전달 받는 뉴스레터, 아까 탔던 버스에서 나오던 해외 소식들 같은 정보들이나 지금 앉아 있는 의자나 건물을 지은 사람들, 김이 채 가시지 않은 커피를 키우고 수확해 보낸 농부, 어제 먹었던 고기 한 점이 통통한 돼지였을 적에 마셨던 공기, 약 30억년 전 대기에 떠돌다가 기나긴 시간을 관통해서장관막에 안착했을지 모를 작은 분자 하나까지... 지구 어딘가의 누군지도 모르는 요소들을 다 모아야 자아를 겨우 설명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이렇게 복잡계로 이루어진 세상에서 극대로 크거나, 극소로 작다는 가정 하에서 가설을 세우는제한적 관점으로 잘라서 가설을 세우는 과학 교육에 익숙한 사람 (관련 p. 282)인 탓에 이 책이 꽤나 어려웠던 걸지도 모르겠다. 서로의 생각이 끊임없이 흐르는 통합된 시스템적 과학으로의 생각 전환은 자아의 확장 만큼이나 시도가 어려운 문제다.
홀로 저절로 태어난 것이 아니고, 우주와 과거 지구 위의 생명으로 살았던 존재들이 흩어지고 다시 모여서 우리 몸의 구성요소는 순환하고 있고, 개방적인 생태계 시스템 안에서 불변의 나를 찾기란 어렵다. 하물며 체내의 장기와 체액이라도 내 것인가 살펴보면, 결코 그렇지도 않다. 사람의 몸은 약 38조 개로 추산되는 박테리아로 이루어진 미생물군유전체, 일명 마이크로바이옴이 존재하면서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초유기체'로 볼 수 있지만, 동시에 바이러스에 행동을 조종 당하기도 하는 '초식민지'적 성격도 띄고 있다. 집을 소개하듯이 내 몸을 소개하려고 했다가는 여기저기서 '우리도 사생활이 있는데 보지 말라'며 볼멘소리가 나올 지경이다. 한방향으로의 진화를 기반으로 한 생명의 나무와 같은 형태라기보다 DNA 간의 수평적인 이동이 빈번한 세상에서 DNA조차 우리의 것이라기 보다 공유 드라이브 상에서 빌려온 느낌이 든다. ((1부))
모든 사람은 항상 작은 수의 신경세포만이 연결되어 있는데, 이를 '커넥톰(Connectome, 뇌 지도)'이라 부른다. 커넥톰은 우리의 생각과 성격과 기억의 한계를 정한다. (p.94)
뇌마다 연결성의 차이가 사람마다 성격과 기술의 차이를 설명하며, 커넥톰의 역동적인 특성이 시간이 지나면서 성격의 차이를 설명한다. 우리는 예전과 다르며, 10년 전은 고사하고 5분 전과도 다르다. 우리의 커넥톰, 즉 신경세포 간의 전체 연결망은 우리의 현재 의식과 정체성을 담당한다. (p. 96)
이런 커넥톰은 끊임 없이 흐르는 물과 같아 개인 간의 차이는 있지만, 다른 사람들과 '공명(resonance)'하며 기쁨도 슬픔도 함께 공유한다. '공명'이란 단어를 대학 때 처음 배운 이래로 가장 아름답게 느껴지는 구절이었다. 이런 연결망은 소셜 네트워크로 인해 모두 인지하고 있는 것 같다. 서로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를 잘 이해하고 있지 않으면 도리어 위험한 감정을 퍼트리게 됨을 알기에 더욱 이웃을 사랑해야 함을 느낀다. 거미줄과 연결된 상호작용으로 뒤엉킨 우리는 혼자가 아닌, 전체가 잘 살려고 노력해야 한다. 상호의존성을 이해하지 않으면 과거 인류를 풍족하게 만들어진 산업과 기술은 다시 우리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2부))
우리는 나만의 일관된 자아를 가지고 있을 거라는 '자아환상(self delusion)'에 빠져있다고 저자는 표현한다. 살아가는 과정에 자아관이 필요하기 때문에 독립적인 개체라고 믿도록 진화하면서 지금의 우리를 만든 주변의 모든 사람과 사물, 즉 외부 세계와의 연결성을 잊어버린다. 또한, 지금의 발전을 만드는데 크게 일조한 환원주의적-개인주의적 세계관으로 인해 연결성과 외로움이 함께 높은 대인관계, 자연의 결핍, 더 이상의 지구차원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한계'이라는 문제가 발생했다. 복잡성의 세상에서 인과 관계의 연결망의 존재는 개인 한명의 파급력의 놀라움에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연결성을 인지하고 연민을 가지고 서로 기분 좋은 관계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만으로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걸 알려준다. ((3부))
그대, 미소 지어 주세요
데드라인에 대한 약간 초조함과 서평이 차곡차곡 잘 써질 때에는 있는 줄도 몰랐던 완벽주의가 빼꼼하게 나온 상태에서 가게 된 곳은 '국립항공박물관'이었다. (* 여러 매체를 통해 적극 홍보도 하고 있고 아이들이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활동도 많이 준비되어 있는 국제김포공항 옆의 박물관이다. 아이들 기준에서는 5살~ 초등학생 정도가 가장 좋아할 것 같다. )
아이가 공항 주변을 미니어처로 만든 것을 보는 사이 고개를 돌렸을 때, 벽에 걸린 '한 사람의 미소'가 눈에 들어왔다. 공항 내 식당가에서 식탁 위를 깨끗하게 닦고 계시던 한 종업원 분의 환한 미소를 찍은 사진이었다. 그 사진 주위로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공항이란 공간을 만들어가는 많은 분들의 사진이 걸려있었다. '미소'에 눈이 간 순간 함께 나란히 걸려있던 사진이 거미줄처럼 연결되는 환상적인 감정을 느꼈다. 아주 단순하지만 직접 마주한 것도 아닌 사진 속의 '미소' 하나가 우리가 하나로 연결을 됨을 느끼는게 어려운 게 아니란 생각을 일깨워줬다. 결국 살아가는 공동체 안에서의 모든 것들을 같이 만들어 가고 있음을 잊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엄마, 저기에는 뭐가 있어요?" 아이의 목소리가 짧은 상념을 깨고 동그랗고 반짝이는 눈 한쌍이 나에게 눈 마주쳐왔다. "글쎄~ 우리 같이 가볼까?" 느슨했던 입 꼬리를 끌어올리며 우리는 같이 휘어진 길을 종종 거리며 걸었다.
우리는 분명히 연결되어 있다. '나'라는 존재를 가꾸려고 독립성을 찾아내려고 부던히도 노력해왔지만 뜻대로 되지 않음에 부침을 겪기도 한다. 어쩌면 개인들이 시련과 좌절로 느껴하는 것은 우리 안에 우주의 조각을 나누어담고 태어나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잊었기 때문아닐까.
거대한 연결 안에 있다는 게 불편하고 무거운 책임으로 느껴질 수 있다.하지만 별 건 없다. 겁낼 것도 없다. 우리가 연결 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다면, 시작은 작은 미소면 충분하다. 타인과 마주 치는 순간의 '미소'는 우리가 무의식 중에 서로와의 연결을 느끼는 가장 강력하지만 쉬운 방법이다. 무엇보다도, 여기는 한국이 아닌가. 저자 톰 올리버는 '개인이라는 허상'이라는 의미로 원제를 [THE SELF DELUSION]이라 지었고, 동서양 문화에서 오는 간극을 설명하기 위해 리처드 니스벳의 <생각의 지도>도 인용한다. 적어도 한국 문화를 경험한 사람들은 개인보다 확장된 개념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토대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정원을 가꾸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현대 세계에서 엄청난 의지로 무언가를 성취하려고 서두르는데 익숙하지만, 정원 가꾸기는 올바른 조건을 조성해 인내하며 자연이 주도하도록 하는 것이다. (p. 269) ... (중략) ... 우리는 모두 습관을 바꾸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좋은 습관을 키울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을 찾을 수 있다면, 의식적인 노력 없이도 거의 기계적으로 긍정적인 행동을 취할 수 있다. (p. 270)
책과 책이 연결될 때 오싹한 느낌은 소름끼침의 감정류에서 단연 가장 기분 좋은 순간이다. 이전에 읽었던 [전념]에서 '정원'에 대한 비유가 나왔을 때도 감동적이었는데, 이 책에서도 거의 같은 비유를 발견하니 관심없던 정원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이정도면 사회적으로 전념의 가치를 전하고 연결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정원을 가꾸기를 적극 권장해야 하는 것 아닐까 싶다. 자연을 따른다는 것이 단순히 푸르름을 즐기는 것보다 위대한 의미란 걸 배워간다.
습관을 만들 때 가장 손쉬운 수준부터 시작하듯이, 바로 모든 연결됨을 회복하려 하지 않아도 된다. (습관이란 단어를 쓰다가 270쪽을 발견하고 할 말을 잃었다. 너무 뒤늦은 칭찬 같지만, 저자는 책 한권으로 쓰여진 이야기들도 저렇게 몇 줄로 알려주는 정말 박학다식한 사람인 것 같다. 자연과학-신경과학-심리학을 아우르다니... 이 또한 폴리매스란 증거겠지) 아인슈타인은 "세상은 사람들이 나빠서가 아니라 아무런 생동을 하지 않아서 위험하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고 한다. (p.114) 오늘 마주치는 사람에게 반갑게 인사하고, 미소를 건네자. 지금 이 글을 만난 그대, 부디 미소지어 주세요 ^ㅡ^
마무리하며
아이러니 하지만, 독서 기록을 완벽하게 해보고 싶다는 소소한 집착이 오히려 마음을 걸어잠그고 머리로만 완벽하게 읽으려 했나라는 반성을 하게 해주는 책이었다. 내용을 이해한다는 것 너머에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었다. 웃기게도 이렇게 웅장해진 마음으로 서평을 쓰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던 구절이 있었는데 하면서 뒤적뒤적 거리다가, '역시 기록을 잘해야 한다니까. '라고 혼잣말 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전 우주적, 전세계적 스케일의 연결성에 초점을 맞추다가 내 안의 뇌, 몸과 마음의 연결성을 잠시 잊었던 것 같은데, 독서 기록이 필요한 이유가 다시 확인 되었으니 서평 쓴 후에도 빈 칸은 좀 더 채우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