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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인생이 지옥처럼 느껴질때, 마샤 리네한 저] 가족의 고리1F 책책책 2022. 4. 27. 06:17반응형
모든 책은 '나'라는 필터를 통해서 읽게 된다.
자살 위험이 있는 환자들의 치료를 위한 변증법적 행동치료의 창시자인 마샤 리네한의 책, [인생이 지옥처럼 느껴질 때]는 내 안의 '엄마, 연구자, 삶에 대한 갈망' 이라는 필터로 읽히는 책이었다. 이렇게까지 싶게 처절하게 고백해 놓은 그녀의 인생이 너무도 드라마틱해서 섬광같은 속도로 읽혀내려갔지만, 여러 번 책장을 넘기던 손을 멈추고 생각에 잠기게 하는 책이었다. 첫번째로 '엄마'라는 정체성에 와 닿았던 이야기를 써보려 한다.반드시 필요한 '자기-타당화'의 시간
부모가 된 뒤에 '이제 내 삶은 다시 돌아가지 않는구나, 다시 되돌릴 수 없구나. '를 알았다. 나만 바라보고 먹고 울고 반응하는 아이를 보면서 부모가 되는 책임감에 대해 많이 고민스러웠다. 그렇게 직접 배 안에 품고 있었을 때 애뜻한 감정 그 이상의 무엇이 필요한, 모성이란 완전히 새롭게 만들어야 하는 정체성의 일부였다. 이런 부모라는 정체성 구축에 자연스럽게 잊고 있던 과거의 장면들이 떠올랐다. 부족하지 않은 환경에서 충분히 사랑 받고 자랐다고 느끼지만, 그럼에도 과거의 몇 개 안 되는 부모님과의 비타당화 경험이 되살아났다. 그리고 마샤의 삶 속에 들어갔던 동안에 다시 그 경험을 마주 했다.
"비수인적, 비타당화"
(invalidating enviroment)
: 자신의 경험에 대해 중요한 타인(부모, 친척, 교사 등) 이 이상하게, 부적절하게, 극단적으로 반응하는 환경
(4장)마샤는 특히 부모님, 어머니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느꼈다. 모터 달린 입이라고 묘사하는 특징에서만 보아도 여성스럽고 조신해야 한 태도과 일정 범위 내의 몸무게 등 어머니의 기준 자체는 구닥다리처럼 느껴지지만, 마샤가 태어난 건 2000년대 전후가 아닌 1943년도였다. 18살에 정신병원에 입원하면서 병원에서 '가장 힘든 환자'로 분류되 가장 지독한 격리 병동에 갇혀있는 것이 더 익숙한 환자로 추락해버렸다. 입원 후부터 시작된 자해는 안경알을 깨서 팔에 상처를 내고 담뱃불로 손목을 지저 팔찌 모양을 만들기도 하는 수준이었고, 고통을 끝내고 싶어 선택한 자살시도도 있었다. 그야말로 병원을 벗어나기 어려울 환자였다. 병원을 나온다해도 부모님과의 관계의 회복은 요원해보였다. 다른 사람이 할 수 없다해도 스스로 할 수 있다고 믿음을 쌓아간 그녀는 병원을 나왔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돕겠다는 소명으로 임상심리치료 연구를 해나가고 DBT 치료법을 개발하는 일까지도 해낸다. 자신의 삶을 꾸려나갈 수 없었을 것 같았던 여성이 결국은 성장해내고 마음의 평화를 발견하는 과정을 함께 하는 동안 독자도 치유 받는 감정을 느끼게 해준다.안타깝게도 그녀는 변했지만, 부모님들이 변할 수는 없었다. 한 때 어머니가 마샤를 이해해보려고 노력했던 시간이 있었지만, 어머니의 기준에 맞지 않는 것을 끝내 받아들이기 어려웠기 때문인지 어머니가 암 투병을 하면서는 그 노력을 내려 놓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녀도 부모님을 만나는 것을 그만 두었다. 부모 기준에서는 의절로 느껴졌을지 모르지만, 단번에 그녀의 인생을 읽은 제3자이자 독자로서 그녀의 선택이 합당해보였다. 지난 시간동안 감내한 '비타당화'를 넘어 부모의 사랑만을 간직하려는 다분히 '자기-타당화' 의 행위라고 느껴졌다. 마샤는 그저 독립한 것이다. 튤립을 장미로 탈바꿈 시키려는 건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란 걸 알아낸 것 뿐이었다.
(p.103)
엄마는 내가 장미가 되면 훨씬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그때도 지금도 장미로 변하기 위해 필요한 요건들을 갖추지 못했다. 이 튤립 대 장미 이야기는 내가 DBT 상담에서 내담자에게 말하는 방식의 일부로 자리매김했다.
"당신이 튤립이라면 장미가 되려 애쓰지 마요, 대신 튤립 정원을 찾아가세요. "여러 번 부모님에 대한 구절에서 언급되는 표현들을 보면 그녀는 부모님의 행동과 의도를 이해하고 안타까워 하고 있었다. 그러나 상처 주는 언행들을 더이상 받아들일 수는 없기에 더 이상의 생채기를 거절한 것 뿐이다. 그녀를 대화나 상담도 거치지 않고 바로 병원으로 보낸, 직접 딸의 아픔을 알아보지 않은 부모님이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그들 방식의 사랑은 온전히 받아들였으니, 이보다 더 독립된 자녀가 있을까... 그들은 그녀에게 전혀 좋은 부모였다고 할 수 없음에도 완벽하게 마샤를 독립된 자아로 길러낸 부모가 되어 자녀 양육의 가장 중요한 목적을 달성한 셈이다.
마샤의 경우는 매우 극단적인 경우이지만, 누구에게나 작고 큰 '비타당화'의 경험이 있을 수 있다. 그저 사춘기에는 날이 서있던 그 감정들이 사회인이라는 또다른 모습의 껍질을 만드는 동안 오랫동안 웅크리고 있었던 것일 뿐이다. 아이를 낳고 난 뒤에는 이런 감정이 다시 몰려오는 것이 당황스러웠다. 나 또한 그러했으니, 부모님은 마음이란 얼마나 오랫동안 남는 것인지 상상도 못하실 테다. 게다가, 고작 (?) 그런 상황이 '비수인적'인 상황으로 받아들였는지 반문하실 것 같다. 겉보기에는 아무 문제 없었지만, 내면은 스스로도 이유도 모르는 슬프고 답답한 감정이 그저 사춘기라 그럴거라고 답을 내렸고 시간이 흘렀다. 그때나 지금이나 콕 찝어서 설명하기 어려운 건, 감정을 겪은 나조차도 마찬가지였다. 그랬기에 다재다능하고 낙천적이고 인기 많았던 여학생 마샤에게도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정말 눈치채기 어려웠다는 게 공감이 된다.단 한 사람의 지지
(p. 147)
... 스스로를 곤경에 빠트렸다는 비난을 쏟는 대신 이렇게만 말했다.
"우린 극복할 수 있을 거야, 마샤. 네가 정상이란 걸 우리 모두 알고 있고 심의회 같은 건 절차상 필요한 일일 뿐이니까. 곧 끝날 거야. 가능한 빨리 다시 위원장을 만나서 네가 건강하다고 말하고 이 보호감호 조치를 끝내버리자. 너한테 그런건 필요 없으니까. "마샤는 이 당시 그녀를 생각하는 다정한 오빠 얼의 마음을 진심이라고 느꼈다고 했다. 약간의 사고를 친 여동생한테 빈말로라도 이렇게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가 갑작스런 자해 충동으로 괴로울 때 도움을 청한 것이 위기관리센터인 탓에 정신 병동에 감금된 상황인 걸 고려하면, 고작 몇 살 더 많은 오빠에게도 그 말이 쉽게 나온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늘 시간에 맞춰 나타난 적 없는 오빠가 제 시간에 당도해서 (실질적인 탈출을 위해서는) 발언권조차 없는 자신을 구해주고, '너에게 이런 조치는 필요치 않아' 라고 말해줬을 때, 그녀는 비로소 가족으로부터 받은 '비타당화'를 벗어날 씨앗을 찾았다고 느꼈다. 가족 전체가 아닌 단 한 사람에게 받는 지지만으로도 그녀는 다시 자신을 찾아갈 결심을 하기 시작한다. 받아들여졌다는 안도감과 안정감이 토대가 되었기에 이후에 만드는 DBT치료방법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용'이란 내용이 포함될 수 있지 않았을까 추측해봤다.
(p. 404) 아직 갖지 못한 것들을 가져야 한다는 억압에 짓눌려 사는 것보다 삶이 주는대로 수용하는 편이 더 낫다. 그렇다고 만사에 수동적이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절대 아니다.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놓으라는 말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수용이다.아이가 어느 덧 여섯 살이 되었다.
밝고 잘 뛰놀고 말도 종알종알 잘하는 아이로 열심히 자라고 있다. 많이 안아주고 아끼려고 하는데도, 아이에게는 충분치 않구나라고 느끼는 날들이 있다. 마냥 돌봄을 벗어나서 작은 사회에 나아가니 예절이나 규칙에 대해서도 가르치게 되는데, 훈육하는 과정에서 울음이 터지는 경우가 몇 번 있었다. 아이가 우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지만 훈육하는 부분과 다른 부분에 반응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한 번은 아이의 눈빛이 변하던 순간을 눈치 채고 진정이 된 아이에게 슬며시 물어보았다.
"혹시 아까 '그래도오~'라고 소리친거 말이야. 혹시... 네가 화를 내고 떼써도 엄마아빠가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응, 내가 말 안 들어도.. (훌쩍).. 그래도오.. 떼 써도 안아줬으면 좋겠어. "
고심한 단어로 조심스레 물어보고도 대답에 가슴이 철렁했다.
그게 제어가 안되는 이 마음까지도 안아달라는 외침이었구나, 그것까지도 사랑받고 싶은 욕심이 있었구나. 또, 그런 욕심이 자연스럽게 아이에게도 유전되었구나. 결국 20여년이 지난 질문에 자문자답한 셈이었다. 아이를 꼬옥 품에 안아주었다. 아직도 온전히 독립하지 못한 어른아이여도 너른 품이 되어줄 마음만 먹으면 충분하다는 걸 깨달았다. 아이를 늘 지지하는 엄마로 자랄 수 있도록 지금의 마음을 잊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해야한다.가족의 고리
(p. 442)
정서 조절 문제 경향이 있는 사람들은 보통 비수인적인 환경에서는 문제가 있지만 수인적 환경에서는 꽤 잘지낸다. 나는 이것을 경계성 성격장애에 대한 생물사회학적 이론이라고 명명했다.뜻하지 않게 나타난 제렐딘, 첫인상에는 '곧 대학 갈 아이 치고는 특이하네' 라고 느껴졌던 아이, 짐 대부분을 인형을 싸와서 파묻혀있던 그 아이가 딸이 되어 마샤의 가족을 이루었다. 가족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여겼던 그녀가 심지어 비교적 동등할 수 있는 배우자도 아닌, 부모가 되어줘야 하는 딸과 가족을 이루는 것은 놀라운 변화였다. [전념],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에서 연속적으로 발견한 '정원'의 비유*의 실사례가 마샤의 새로운 가족이라고 느꼈다. 얼마나 그녀의 가족이 얼마나 안정감을 주는지 글에서도 묻어났다. 그녀는 누군가와 함께 살고픈 사람이었고 실제로 가능한 사람이었다.
(*관련해서 다른 씽커 분께 추천 받았던 [정원사 부모와 목수 부모]도 기억났다. 기억이 난 김에, 서평을 쓰고 바로 접해봐야겠다. )엄마가 되는 것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어려운 일이었지만, 너무 다행스럽게도 과거의 후회와 상처들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고 스스로 보듬고 수용할 기회가 되어주었다. 수용적 태도는 솔직한 꼬마와 어른 아닌, 딱히 엄마도 아닌 있는 그대로인 '나'로 대화할 수 있게 했다. 더 쉬운 말로 아이도 알 만큼 쉽게 감정을 설명하는 연습을 하면서 마음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다. 어린 시절의 나, 지금 내 나이 즈음에 이미 세 아이의 엄마로 힘들었을 과거의 엄마, 이제는 할머니로서 딸과 손주를 함께 하는 지금의 엄마를 약간은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확인되는 '가족'의 정의는 아직 좁디 좁다.
가족
(명사) 1. 주로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 또는 그 구성원. 혼인, 혈연, 입양 등으로 이루어진다.마샤가 처음 도우려 했던 것은 심각한 행동장애가 있는 사람이었지만, DBT는 누구만에게 국한 되지 않는 모든 사람을 위한 '삶의 기술'이기에 분명 모든 사람이 익힘으로써 자신과 타인의 유대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이다. 하지만 DBT 기술을 익히기 위한 전제로 적어도 충분한 지지를 받을 수 있는 단 한 사람은 반드시 필요한 것 아닐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적당한 부딪힘을 겪으면서 가족을 비롯한 사회에 적응해가지만, 가장 작은 사회인 가족에게서 개인의 기질적인 특이성을 이해받지 못하면 독립적인 개인으로 자라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어떤 경우에라도 지지해주는 한 명 이상을 '가족'의 의미에 추가해야 하는 것 아닐까라고 느낀다. 마샤와 제럴딘의 관계를 보면서 가족의 모습이야말로 이러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친족 관계에 놓여 있기 때문에, 유전적이고 문화적인 배경을 공유했다는 익숙함 때문에 우리는 때때로 좁디 좁은 가족의 고리 안에 포함되야만 한다고 느끼고 또 노력한다. 혹시나 아무리 노력해도 가족에게 전혀 지지받을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면, 보다 수인적인 환경을 선택하는 게 옳다. 그렇다고 누구나 극단적인 취사선택을 필요치는 않다. 오늘날에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하지 못하는 것들을 보완해 줄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공동체, 커뮤니티들이 다수 존재한다.
마지막으로, 좋은 부모이자 좋은 어른으로 거듭나야 한다. 부모라면 아이에게 사랑을 주고 그 아이가 자신을 튤립이든 혹은 장미이든 자연스럽게 아름다운 정원으로 가꾸는 방법을 찾는 여정을 도와주어야 한다. 또, 마샤가 그러했듯이 나를 구하는 노력 이후에는 더 많은 사람이 수용과 DBT와 같은 삶의 기술을 접할 수 있도록 나누어야 한다.
난 운이 좋게도 사랑 받는 환경에서 자랐고, 독서하는 환경의 커뮤니티들 안에서 배우고 익히면서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고 느낀다. 그럼에도 나의 '수용'은 아직 가족과 소중한 이들에게만 한정이다. 보통사람이지만, 서로 손잡아 주면 가족의 고리보다 넓은 사회의 울타리 안에 살 수 있을 거라 희망해본다.'1F 책책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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