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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평 [게놈 오디세이, 유안 A. 애슐리 저] 정밀의료가 성큼 다가오다
    1F 책책책 2022. 3. 28.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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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 읽은 책은 '유전체학 기반의 치료가 가능해지는 시대'가 곧 다가올 것임을 알리는 책이다. 많은 것들이 개인의 취향과 관심도에 맞춰지고 있었지만, 중요한 건강의 문제는 그렇지 못한 것이 사실이었다. 곧 우리는 정밀의료의 시대에 살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뭉뚱그려 여성 30-40대에 많이 발병하는 어떤 질환에 대한 건강검진을 하는 식이 아니라, 신분증 대신 개인 유전체 지도를 가지고 발병 가능성이 있는 병들에 대한 예방과 조치를 취하는 맞춤 의료를 받게 될 것이 멀지 않았다는 것이다. 흔히 '체질'이라는 표현으로 불리우던 개인마다의 음식, 약에 대한 다른 반응도 세세하게 구분하게 될지 모른다. 

     

     

    > 가족, 누구보다도 전문가인

     

     

     

     이 책 [게놈 오디세이] 안에 소개된 숱한 부모들은 오래 전 생화학 교수님이 보여주셨던 한 영화를 기억나게 했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로렌조 오일 (1992)]에는 갑자기 아들이 희귀난치병을 진단 받으며 시작한다.  이 병에 걸리면 점차 귀가 먹고 실어증이 생이고 시력이 망가지고 음식을 삼키지도 못하며 뇌신경 장애가 와 몸이 굳어 발병 후 2년을 못 넘긴다는 말에 부부는 충격에 빠진다. 이 ALD (부신백질이영양증)이라는 희귀 유전병에 걸린 아들을 구하기 위해 직접 유전학, 미생물학, 신경학 등을 공부하여 특정 불포화 지방산을 먹는 식이요법으로 병이 뇌세포를 공격하는 것을 최대한 늦춘다. 2년 밖에 못 살거라던 로렌조는 부모의 헌신적일 뿐 아니라 각고의 노력으로 2008년 30살까지 생을 이어갔다. 아직도 완전히 치료법을 찾지 못한 ALD 환자들은 고가의 로렌조 오일을 먹는 것이 그나마 가능한 치료라고 하니, 이 또한 남겨진 숙제이다. 
     
     

     

     희귀병을 앓는 자녀의 부모의 강한 의지와 사랑을 느끼게 해주었던 로렌조의 부모, 미카엘라-오거스트 부부와 마찬가지로 여러 부부들 또한 깊은 감동을 주었다. 정말 자녀의 병의 치료법은 커녕 무슨 병인지 알기 위해서 여러 의사와 병원들을 찾아다니는 모습은 나로선 읽는 것만도 버거운 장면이 많았다. 그렇지만 시간이 많이 흐르긴 한 걸까? 부모들의 노력이 전문가적이 되어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중에서도 아들이 희귀병을 진단 받았음에도 동일한 증상을 가진 다른 환아를 찾아야 치료가 가능하다는 말에 영화 [테이큰]의 리암 니슨의 이미지를 차용해서 블로그에 글을 남긴다. 비교적 재정적으로 풍족했지만 영화 속에서 전직 CIA 요원이었던 리암 니슨만큼이나 '남다른 재주'가 있었던 아버지 맷 마이트는 그 블로그 글을 통해서 결국 또 눈물을 흘리지 못하는 아이를 찾아내고 NGLY1병을 진단받아낸다. 그것만이 아니라 이 부부들도 직접 생화학 강의까지 듣고 NGLY1병의 대표 증상인 GlcNAc 수치를 보충해줄 영양제로 아들의 증상이 완화되는 것을 확인한다. 책 소개 영상에서도 보고 들었는데도, 책으로 영양제가 혹여나 부작용이 있을까 60그램의 분량을 한번에 먹어보는 장면과 아들 버트란드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두 눈에서 눈물을 끝없이 흐르는 장면에서는 도저히 울컥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부모가 되었지만 과연 아이에게 마르지 않는 헌신을 할 수 있을까, 별 탈 없이 건강한 아이를 보며 그저 감사할 뿐이다. 
     

    > 환자, 결코 약하지 않은


     비대심근병증을 앓는 릴라이(15, 16장)를 보면서 자신의 몸에 주어진 고통을 받아들이는 것도 모자라 마치 자신을 수술대에 올려놓고 집도하는 의사 같은 착각마저 드는 용사였다. 여러 번의 심정지를 겪고 심장까지 이식을 통해 바꿨지만 또 다시 찾아온 동일한 유전자 변이라니... 

     좌절하고 치료를 포기해도 이상하지 않을텐데, 다시 병을 만났음에도 새로운 심장 문제에 대해 자신의 가설이 맞았다는 사실에 미묘하게 기뻐하며 굳건하게 치료를 해가는 릴라니는 여러 환자를 봐왔을 저자 또한 감탄을 금치 못하는 눈치였다. 

     
    우리의 몸의 세포는 그 자리 그대로인 것처럼 보이지만, 모두 한바퀴 바뀐다. 뼈는 10년, 간 세포는 12~18개월, 혈액 세포는 3~4개월이면 새 세포로 교체된다. 세포가 바뀌지 않는 심장까지 바꾼 그녀는 오롯이 그녀라 할 수 있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그녀의 굳건하고 강인한 영혼은 어디에 담겨있을까? 태어난 이래 바뀐적 없는 뇌와 안구 세포 어딘가에 있을까?


    이전에 면역항암제의 개발이야기를 읽으면서도 답을 찾아내도록 의료진을 끌고 가는 것은 결국 환자들의 의지인 것 같다. 




    > 제약회사, 실패는 기본인


     이미 게놈 프로젝트가 시작된 이래로 '유전체학'이 신약개발의 한 축을 담당해왔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이제는 어떤 경우이든 유전자학적 배경에서 신약개발의 가능성을 미리 검토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에서 나오는 것만큼 희귀한 유전질환들은 문제적인 변이 유전자를 찾는 것부터가 문제 지점이 되지만, 암 종의 경우에는 관련 유전자 변이에 대한 정보들이 비교적 확인되어 있다. (그 외 질병들에 대해서는 지식이 없어 언급을 못하겠다.) 기본적으로 프로젝트 시작에 앞서 이런 유전자 변이에 따른 환자군의 비율을 검토하고 기존의 치료제가 있다면 작용하는 환자군을 확인하는 등의 미충족수요 (un-met needs)를 확인할 때 유전체 관련 정보가 활용되고 있다.  


     화이자 조차도 HDL를 높이는 약을 만드는 바보짓으로 시간과 돈을 낭비했다는 사실은 인상적이지 않을수 없다. (그런 바보짓을 반성하고 극복해서 mRNA 코로나백신을 만들어낸 것일지? 최근 화이자의 백신을 소재로 <문샷>이라는 책이 발간되었다. )  그런 빅파마에서도 상관성과 인과관계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했다는 것이 의아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기존 방식의 신약개발의 난이도가 점점 올라가고 있는 한 측면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비임상 단계에서는 효능을 보이는 약을 만들고 점차 안전성을 점검을 하면서 사람에게 적용하기 위한 임상과정을 거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최종적으로 임상에서 떨어질 때는 안전하나 효능이 낮아 떨어지는 케이스가 많다. 그러나 유전자 치료는 그야말로 개인 맞춤 진단과 치료가 이루어지므로 훨씬 부작용과 독성의 위험에서 자유롭다. 전체 파이프라인 중 일정 부분은 실패를 전제로 시작하는 제약회사들이 언젠가 유전자 치료 시장을 더 치열하게 만들 것이고, 누구나 페라리급 유전자 치료를 받는 날이 그만큼 앞당겨질 것이다. 그 때는 유전체학을 통해 더 정확한 접근이 가능해질 것이고, 알면 알수록 복잡해서 정말 현기증이 나는 우리 몸을 약간 더 알게 될 수 있을 것이다. 

     

     

    > 의사이자 과학자인 이들, 소명의식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지금까지 유려하게 잘 갖춰진 책에 대한 감탄만 늘어놓았다면, 약간 아쉬운 점을 말해보려 한다.
    이 책의 저자인 유안 A. 애슐리 박사의 소설과 같이 풀어내는 놀라운 필력에 사실 너무 많은 과학자들의 노고가 가려져있다.  
    매 장마다 유전체학 내에서도 각 세부 분야의 적임자인 스페셜리스트가 매칭되고 프로세스를 단축해가면서 페라리가 몇 센트가 되어가는 과정은 분명 대중에게 과학을 알림에 필요한 일이 분명하다. 그런데 엄청 방대한 이야기를 모두 담다보니 너무나도 쉽게 답을 찾아내는 느낌을 주었다. 

    앞서 읽었던 [유전자 임팩트]에서 다루었던 CRISPR 기술이 언급된 부분의 양과 비교해보면 얼마나 압축적으로 많은 내용을 담았는지 유추가 가능하다.  [유전자 임팩트]가 한 도시에 대한 여행 가이드 북이라면, [게놈 오디세이]는 유전체의 지도만이 아니라 유전제학에 종사한 전문가들의 인명사전 또는 옐로우페이지 (추억의 전화번호부)를 만들어낸 느낌이다. 저자의 의도와 무관하게, 독자들이 이들의 사명감를 너무 가볍게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글로 읽으며 느낀 것보다도 조금 더 어렵고 지난한 과정이 있을 거란 상상을 보태주면 좋겠다.  

     

     

    배움, 실천, 그리고 나눔 
     
     
     
    3부 첫 부분인 12장-'위스키 어 고고'에서는 QT Prolongation (QT 연장 증후군)이란 용어가 계속 언급이 된다.
     
     항암제는 일반 약물의 개발의 경우보다는 부작용에 너그러운 편이다. 일시적으로 부작용이 있더라도 투약기간을 지나 회복될 수 있다면, 많은 사람들 인식 속에 의례 항암치료를 하면 머리 카락이 빠진다는 정도의 부작용은 감수하게 허용해준다. 그럼에도 생명에 위협을 가져오는 부작용은 당연히 배제되어야 하기에 '심장 독성'에 대해서는 예민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다. 1990년부터 2006년 사이 심혈관계 부작용으로 인해서 사용되다가 퇴출당한 약물이 13종이나 되며, 대부분의 부작용이 QT 연장 증후군과 12장에서 같이 언급되는 죽음의 징조인 TdP (염전성 심실빈맥) 유발이기 유전질환으로 이런 증상을 겪는다는 건 매우 치명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신약의 개발 단계에서 심장 독성을 미리 유추하기 위해 대표적으로 하는 실험 중 하나가 hERG assay다. hERG (칼륨 채널의 영향만 확인)나 patch clamp (채널 1~2개 전위차 확인)만으로 판단하기 어려워 보완하기 위한 방법들이 추가로 사용된다지만, hERG는 여전히 개발 초기에 (임상 단계가서 좌절의 계곡에 빠지지 않도록) 시행하는 안전성약리시험의 한 종류다. 
     
    이런 시험 및 관련 유전자 이름이 로스앤젤레스의 인기 있던 나이트 클럽 위스키 어 고고에서 1960년대에 유행했던 고고 댄스 동작의 이름을 따서 인간 에테르 어 고고 (Human EtheR a Go-go) 가 된 거 였다니...  한참 진지한 전개 와중에 갑작스러운 탄생의 비밀이었지만, 오딧세이란 제목 답게 많은 이야기를 담았구나 싶었다. 
     

    (심혈관계 안전성약리 평가법 해설서 2021_식약처 자료)

     
     
     
     그래서 심장을 위험에 빠트리는 QT 연장 현상이 무엇인가 궁금하셨다면 위 그림과 책 속의 설명을 비교해서 보시면 좀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림2 의 (b, c) 에서 검은색 실선이 정상적인 경우, 붉은색이 QT연장이 일어난 경우의 변화를 말한다. (왜 그렇게 이름 지었는지는 모르지만) 건강한 심장은 P-QRS-T파가 반복되고 그 중 Q~T 구간이 본래 리듬보다 길어지면서 잠을 자나 걸으나 뛰나 일정해야 할 파동이 불규칙해진다. 그 자체로도 실신, 경련과 일부 급사 위험도 있으며, 재즐린처럼 TdP 발작까지 일어난다면 훨씬 더 위험해진다. 더 깊은 설명은... 생략한다. 
     
     
     
     분명 유전체학은 나에게 마치 옆동네 이웃과 같은 존재다. 가끔 인사는 나누며 미소를 보아 좋은 분일 것 같다 느끼지만, 사실 어떤 분인지 전혀 모르듯이 간접적으로 업무에 연결되어 있지만 도무지 알 도리가 없는 영역이다. 옆집 정도 될 법한 생명 과학의 분야조차도 업무 관련 세미나로 듣게 되었지만, 계속 잘 모르는 내용을 듣다가 한참 졸릴 오후에 QT prolongation에 대해 들으며 머리가 지끈 거리는 게 사실이었다. '대체 이걸 알면 뭐에 쓰나~  전공 아닌 사람도 있는데 결과가 좋다 나쁘다 해석하는 것부터 알려주면 안되나' 하면서 관자놀이를 누르며 들었는데, 세상에나...  어떤 지식이든 모르는 것보다 작은 조각이라도 알면 뭐든 세상이 넓어진다는 걸 새삼 느낀다. 
     

     

     
     벌써 오래된 일이지만, 갑자기 쓰러져서 헤어진 뒤로 다시 한 번 만나지도 못하고 친구들 곁을 떠났던 한 친구가 떠오른다. 아이들에게는 병명도 알려주지 않았지만, 가족 조차도 몰랐던 유전 질환이었다고 했다. 어린 시기에 너무 착했던 친구를 떠나보내는 건 꽤나 어려운 일이었다. 유일하게 의사가 된다면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까라고 '의사'라는 직업에 관심을 가졌던 시기기도 했다. 
     
     유전체학을 만들어낸 건 8할이 과학자/의사들일지 몰라도 정밀의료로 만들어 낸 건 많은 사람들의 '절실하고 적극적'인 노력이다. 의사가 되지는 않았지만, 어떤 것이든 배우고 실천해서 다른 사람에게 나눌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간다면 미약하지만 사회에 도움이 될 방법이 분명 있지 않을까. 그 때 친구에게는 제대로 손 써볼 시간도 없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유전자 치료로 더 긴 삶의 기회와 소중한 생명을 얻을 수 있기를, 작은 힘이나마 그런 세상에 손을 보탤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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