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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평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심리학, 피파 그레인저 저] 용감하게 아닌 '겁없이'
    1F 책책책 2022. 6. 30.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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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씽큐온 13기 마지막 책이었던 이 책은 가장 술술 읽혔지만, 심리적으로는가장 심부까지 건드리는 책이었다. 
     
    표지에서 약광층인듯이 어두침침한 바다 속의 이미지는 독자들에게 깊은 무의식을 향한 프리다이빙을 제안하는 듯하다. 흔히 빙하에 비유되어 겉으로 드러난 자아와 깊숙히 가라앉아 쉽게 발견할 수 없는 무의식을 직접 헤치고 다니는 듯한 책이었다. 깊은 바다 속에서 훨씬 더 차갑고 무겁게 누르는 공포와 언제나 한 걸음 뒤에 기다리고 있었다.  
     
     
     

    순수하게 드는 공포감 

     
     
    '난 이걸 해낼 수 없어. ' 
     
     누군가가 나의 부족함을 힐난하거나 비난하는 것은 그 자체보다 늘 더 큰 소리로 부풀려졌다. 객관적으로도 성취를 이루고 있지 못하던 시기였지만, 그런 목소리들을 더욱 부풀려서 자기 비관에 빠지게 하곤 했다. 언제나 문제는 가까이에 있었고, 나 자신이 가장 지독한 독약이었던 때가 있었다. 

     

     

    바라보기:

    엄습해오던 부족함 공포의 이미지

     
     
    다리가 무겁게 느껴지는 것과 달리 힘이 없다. 점점 느려지고 뒷목에 긴장이 들어가기 시작한다. 스멀스멀 뱃속부터 불안하게 부글거린다. 약간 차가운 느낌이 목덜미에 닿는가 싶더니 발끝부터 검은 점액질이 둘러싸서 얼굴까지 뒤덮어버린다. 콧망울만 남겨놓은 서늘한 이 무언가는 숨을 뱉어보려 입을 열면 목까지 들어차려고 한다. 눈가라도 훑어내보려 하지만, 버둥거려보아도 어쩐지 더 많이 흘러내린다.
    과거, 그리고 요즘도 가끔은 나를 괴롭히는 공포의 이미지다.
     
     
    저자는 부족함 공포를 순간의 공포와 다르게 묘사했다. 그러나 부족함 공포의 수위가 높아지면 수시로 '순간의 공포'와 '무기력'이 번갈아 밀려오곤 했던, 부정적인 감정 중에서도 특별히 부족함 공포에 취약한 유형이었기에 책을 읽으며 기억을 더듬어 과거의 공포를 묘사해보는 것이 일종의 복기가 되었다. 
     
     
    작가 디팩 초프라가 "상상력을 사용하는 최고의 방법은 창의력이고, 최악의 방법은 불안감"이라고 했던 것처럼 공포에 상상력을 얹어 형태나 이미지를 주면 막연함을 덜어 대응하기 한결 쉬워진다. 버겁기만 했던 것은 무엇인지 모를 막연함의 비중도 꽤 크다. 그래서 저자도 사람들과 상담할 때 대상에 질감이 느껴지도록 감정을 표현하도록 이미지화를 시도한다.
     
    공포는 영리하다. 아무 것도 시도하고 싶지 않게 만든다. 하지만 이미 나타난 공포와 대면한다고 해서 무언가를 더 잃을 것은 없다. 자신을 믿어야 한다. 또 내재된 회복탄력성이 있다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된다.

     

     

    대면하기:

    1) 몰랐던 완벽주의의 공포

     
     
    대체로 스스로의 공포가 '부족함 공포'라는 인식은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도 그 공포가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완벽주의'의 오류에 천착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라는 새로운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평소 오히려 주변에 완벽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편이었기에, 새롭게 발견한 단면에 소름끼치기도 했다.
     
    보통의 경우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을 상상하면, 그에 대한 집착이나 강박이 생기는 모습을 연상했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여기는 것'이 기본값이 되어, 최고의 노력을 했는가라는 질문으로 굳이 스트레스를 만들고 있었다. 나의 능력치로 완벽을 추구할 정도가 아니니 '할 수 있는 최선의 수준에서 더 물러서면 안된다. 난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 ' 라고 되뇌이는 상태에 쉽게 빠졌다. 겉으로는 아쉬운 결과에 대해 '시도는 좋았다' 로 셀프 칭찬을 해왔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위안이 되지 않았던 걸 보면 스스로의 감정을 속여온 것 같다.
     
     
     
    Evanescence <Going Under>
     
     
     
     

    2) 내 안의 시기와 질투 

     
     
    한동안 너무 불편해했던 후배가 한 명 있었다. 딱히, 고백은 아니었지만, 선배와 이야기하다가 싫은 티를 너무 냈던 날이 있었다.   
     
    "걔가 너무 싫다면, 사실은 네가 부러운 거일 수도 있어. 사실은 네가 가지고 싶은 면을 걔가 가지고 있는거 아니야?" 라고 선배가 되물었다. 사실, 선배가 너무 예뻐라 하는 점은 확실히 싫다는 생각을 이미 하고 있었지만, 선배의 말은 꽤나 큰 충격이었다.
     
    그 후배와는 특별히 불편할 일도 없고, 더 가까워질 기회도 없었다. 하지만 경쟁심은 없다 생각했던 스스로가 '질투심'이 넘치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해주기에 가끔 떠오른다. 아직도 그 후배에게 어떤 면이 가장 질투를 불러일으켰던 건지는 콕 찝어서 말을 할 수는 없다. 복합적으로 나와 성향이 참 다른 친구였기 때문에, 가져보지 못한 장점들을 부러워하면서 부족함공포를 자극하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pixabay

     

     

     

     

    대체하기:

    공포를 제공하는 문화에서 살아남는 방법

     

     
     
    자기혐오로 얼룩진 나는 악순환에 올라타 점점 프래질한 상태에 빠졌었고, 과거 더 어린 나이였음에도 결국 건강의 적신호를 선고받기도 했다. 그렇게 팽팽한 긴장의 끈을 놓치고서야 얽혀있던 공포의 일부를 덜어낼 수 있었다.
     
    시간이 흘러 책이 일상이 된 생활을 하는 덕분에 공포를 조장하는 일터에서 일함에도 이전보다 마음은 단단해졌다는 걸 느낀다.
     
    '부족함 공포'는 여전히 내재되어 있을지언정, 내 부족함과 남이 강요하는 공포는 꽤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수동-공격형 리더의 모호한 업무 지시와 자연스러운 책임 전가에 전혀 스트레스 받지 않을 수는 없지만, 비위를 맞추기 위한 일을 하면서 더 작게 웅크리지 않는다. 직설적이라 느껴질 수 있을 법할 정도로 직접 사실을 확인하고, 비밀스럽게 숨겨놓은 정보가 자연스럽게 공유되도록 사람들을 진심으로 대하는데 집중한다. 
     
     
    공포가 환경에 스며들수록, 그 환경에 노출된 사람은 삶에 부정적으로 반응하게 된다. 무엇 때문에 무섭고 불안한지  스스로 알지 못한다.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파악해 내지 못하는 것이다. (중략) 우리는 목마를 화초가 물을 빨아들이듯 환경으로부터 공포를 흡수한다. (4장, 전자책 기준 19%)
     
     
    놀랍게도 나보다 능력있고 경력도 있는 사람들이라 해도 스며든 공포를 잘 처리하지 못하면 더 공포를 뒤쫓는 모습을 발견했다. 공포를 조장하는 문화를 지적하는, 제법 의식있는 사람인 줄 알았던 이가 한없이 부정적인 태도로 대응할 때 조직을 통제하려고 공포 몰이를 하는 이와 겹쳐보인다. 앞서 읽었던 <분열의 시대>를 잠시 빌려오자면, 공포가 스민 사람은 새로운 어트랙터 지형들을 만들 예정인 '잠재적 공포'가 되어버린다.
     
     
    저자는 부족함공포를 대체할 수 있는 여러 방안을 제시했다. 개인의 관점에서는 모두 다 시도해볼 만 하지만, 공포도가 높은 집단 안에 있어 부족함공포가 자꾸 자극받는다고 느낀다면 개인적으로 '진정한 유대감과 웃음'을 특히 추천한다. 
     
    자신의 나약함을 드러내고 유대감을 강화하는 프로그램은 스포츠 세계에서 소위 운동 능력을 향상 시키는 합법적인 물질로 불린다. (18장, 전자책 기준 84%)
     
    문제는 두려움을 느낄 때 도움을 구하기 위해 옆에 있는 사람을 바라보며 도와달라고 손 내밀기를 주저하게 된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들과의 관계를 차단해 버린다. (결론, 전자책 기준 93%)

     

     
    '진정한 유대감과 웃음'은 사람 간의 진심을 기반으로 할 수 밖에 없고, 서로의 진실성과 진정성을 주고받는 것으로 공포를 함께 벗어나기 쉬워진다.

     

     

    용감하게 아닌 '겁없이' 

     
     
     씽큐온에서 선정된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것은 몇 회차가 되어도 매번이 큰 도전이었지만, 이번에는 유독 그러했다. 일터에서 이미 예정된 고비가 보였고, 곧 휩쓸려가게 될 거란 생각에 완주할 수 없다면 신청하지 말까를 고민했었다.
     
    하겠다고 덥썩 시작한 뒤에 못 할 때 나에게 자기비난에 빠지는 정도가 극심했다. 지나치게 자의식이 넘쳤던 것 같다. 최근에는 조금 다른 대응법을 시도해본다.
    문제가 있을 때 상황을 공유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해소하려고 했다. 과거에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어느 순간 깊은 심해 속으로 스스로를 고립시켜 온 사고방식이 더 큰 문제를 야기했다는 걸 깨닫기도 했고, 조직 내의 문제도 결국 사람들 간에 생기는 문제라 어느 정도는 비슷하다는 걸 눈치 챘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완벽한 방법은 아니다. 동물들이 몸집을 부풀리듯인 일부러 더 과장해서라도 유쾌한 모습을 유지하려고 하는 현재는 '용감한 척'하느라 뒤돌면 다소 버거운 느낌이 있다.
     
     
    능력이 있는 사람에 대한 상상 속의 모습은 늘 자신감이 넘치고 용감한 거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 상상을 재현하려고 용감하게 뛰어들었다가도 어수선해진채로 너덜너덜해지기 일쑤였다.
     

     

     
    <최악을 극복하는 힘>,  <마음챙김>, <인생이 지옥이 되는 순간> 에 이어지는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심리학>은 힘들고 지친 시기마다 나타나서 깊이 뿌리내리도록 붙잡아줄 기둥이자, 같은 세계도 다르게 보게 확장시켜주는 변주곡처럼 들린다. 독서를 통해서 어려운 상황 하에서도 자신과 둘러싼 환경을 수용하는 것이 '용기'임을 배웠지만은 실천이 쉽지 않았다. 방향을 잃고 겁먹은 매순간 들려온 노랫소리에 빛이 드는 방향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여전히 쉽게 겁먹고 좌절하고 부정적인 감정의 파도에 휩쓸리기도 하지만, 천천히 다시 일어나면 된다. 단번에 용감하고 용맹한 누군가로 발전할 수는 없겠지만, 파도에 몰려오는 것이 보일 때 온몸을 던져서 '겁 없이' 휩쓸려 보는 것만으로도 큰 도약이니까. 오늘 하루는 피곤하고 지쳤지만, 내일은 또다시 '겁없이'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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