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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평<테크심리학>, 이젠 유투브 링크를 함부로 누르지 않는 이유
    1F 책책책 2020. 8. 23.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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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 참... 두꺼웠다 ㅋㅋㅋ

     

     

    이 책의 원제는 <Bored, Lonely, Angry, Stupid> 다.

    <테크 심리학>이 이 책 전체 내용을 쉽게 이해하기 좋은 단어로 번역한 제목이라면, 

    원제는 본질이 무엇인가에 초점을 맞춘 책이었다. 책을 읽다가 이해가 가지 않은 때마다 원제와 한글판 제목에 대해 고민했다. 

     

    기술 발전(테크놀러지)가 어떤 변화를 일으켰는지에 대해 이야기 하지만,

    그래서 '결국 기술이 사람의 감정에 어떤 변화를 주었느냐를 이야기를 하고 싶은 책이라 ...고 나름 이해하며 덮었다.  

    www.yes24.com/Product/Goods/91575925

    테크 심리학

    페이스북은 우리를 외롭게 한다셀카는 자아도취를 부른다트위터와 게시판에는 적대감이 가득하다기술이 감정 그 자체를 바꾸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전보부터 SNS까지 200년 역사 속에서 생생

    www.yes24.com

     

    생활 속에 스며든 기술 발전

     

    기술은 이제 일상의 구성요소로서 확실하게 자리매김하고 있다. 

    지금만이 그런 것이 아니다. 1800년대 이래로 생각도 못한 물건들이 쏟아져 나왔다. 우리가 지금의 시각으로도 기술 발전에 해당할 거라고 생각되는 것(전화, 자동화 기기, 라디오, 텔레비전)도 있는 반면, '거울', '편지, 전보' 조차도 그 시기의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에 큰 동요를 불러일으켰다는 사실이 충격적이다. 

    p.72.
    20세기 초 한 작가는 "지금까지 발명된 물건 중 면도용 다면거울보다 더 인간의 허영심을 자극하는 것이 있을까? 라고 물었다. 

     

    현재는 거울이 넘쳐나는 것은 물론이고, 건물 외관 조차 유리로 포장되어 있고 주차된 차 표면에도 우리 모습을 비춰볼 수 있고, 수시로 핸드폰도 셀카 모드로 거울 대용으로 쓸 수 있으니, 저 말을 했던 작가가 시간 여행이라도 오면 '이 사람들은 허영심에 찌든 게 분명하군. 도덕심을 상실한 시대로다. ' 라 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 우리는 매일 핸드폰과 컴퓨터를 이용해서 끊임 없이 연결되어 있다. 

    서로 카톡 텔레그램 메세지를 날리고, 먼 곳의 판매자 (때로는 지구 반대편)에게서 물건을 사고 또 팔기도 하고, 드라마도 다시보기 한다. 블로그의 글을 읽고 좋아요도 누르고, 실시간 뉴스를 읽으며 제일 빨리 발견한 사람이 기사를 읽어주기도 한다.

     

    문제는 더 외롭다고 더 지루하다고 느꼈다.

     

    이 모든 것들이 일상이라 불편하기보다는 익숙하지만, 때로는 이상한 감정에 빠지기도 한다. 아주 찰나의 순간이지만, 내가 오프라인에는 없는 것 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마치 <매트릭스(1999)>에서 주인공 레오가 현실이라 느꼈던 모든 것이 가상현실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혹시.. 우리도 ??

     

     

    테크는 나의 자아도취 욕구를 자극하고,

    테크는 나의 지루함을 앗아갔고,

    테크는 나의 외로움을 공고히 해줬고,

    테크는 나의 화를 분출하게 만들었고,

    테크는 나의 무지를 인식시킨다.

     

     

    다른 사람의 SNS를 보면 나도 저렇게 '인생샷'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못해 왜 나는 저런 인기있는 핫플레이스에 못 갔나부터 왜 그럴 시간이 없나, 즐길 여유가 없나 같은 자기 비관에까지 다다른다. 

    '멍 때리기'라는 것을 언제 했었는지 기억이 안날 정도로 이제 지하철이나 버스 안을 둘러보면  그냥 앉아있는 사람을 보기가 어렵다. 정말 피곤하다 싶을 정도로 지루함을 느끼기 어렵다. 이젠 그 수많은 푸쉬 알람과 새로 업데이트 되는 자극들이 지루할 지경이다. 

    순간 떠오른 급한 할 일이라고 생각해서 핸드폰을 만지작 거려 해결하고 고개를 들고나면, 시야 안의 다른 사람들도 엄청 바쁜 듯이 핸드폰 속에 빠져있다. 무엇을 하고 있는지 굳이 물어보기 보다 같이 있지만 같이 있지 않다는 데서 모두가 외로워진 것 같다. 

    처음 인터넷 공간이라는게 생겼을 때 게시글을 읽는 것에 그쳤었다. 꽤 오랫동안 나에 대한 공격이 아닌데도 악플 자체를 보기 싫어서 얼굴을 마주 본 사람들이든 온라인 상이든 점차 의견을 내는 것에 소극적으로 변한다고 느꼈었다. 하지만 익명성 뒤에 숨어 비겁하게 구는 사람들의 수위가 높아지는 걸 보면서 대댓글까지 못하더라도 '싫어요'라도 눌러서 화를 내기 시작했다. 오프라인과 동일하게, 온라인에도 1명으로 발언하겠다는 심리가 화도 분출하게 만들고 있다. 

    한국은 IT 기술에 있어 앞서나가기도 하지만 매우 좋은 '테스트 베드'라고 한다. 어쩌면 새로운 것에 빨리 앞서나가고 싶은 심리에 오지랖들도 넓은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일하면서 만나는 사람들 중 뛰어난 사람은 소수 같은데, 온라인 상에서 모르는 사람은 나뿐인 듯한 괴리감은 점차 커져간다. 정보도 넘치고, 매끄럽게 읽기 좋게 잘 쓰인 글을 보면서 무지함에 답답함도 커져갔다. 

     

    어느 것이 진짜 나의 감정일까? 이 감정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이 책을 읽으면 아주 재미난 2개의 차트를 발견할 수 있다. 구글 엔그램에서 18세기~20세기에 이르기까지 

    ' 외로움','고독', '지루함', '권태' 4개의 단어가 어떤 빈도로 쓰였는지 그 추세를 볼 수 있다. (p197, 207)

     

    차트를 보면 '외로움과 지루함'이라는 것은 1800년 이전에는 마치 존재도 하지 않았던 감정인 것만 같다. 

    그 2가지 감정은 점차 많이 언급되지만, 현대인들은 이제 '고독과 권태'는 잊어버리고 있는 중이다. 

    과연 예전에는 '고독에 빠진 사람'은 '외로움'은 전혀 느끼지 않았을까? '권태'라는 감정은 '지루함'이 전혀 안 섞여있었을까? 

     

    '기술 발전'이 가져온 사회적 변화에 의해  특정 감정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달라진 것 뿐이지 않을까? 

    결국 내 마음안에 담기는 감정인데, 스스로 해석하고 답할 수 있으면 되었던 거다. 

    어떤 '기술'에 좌지우지 되는 것은 갈대와 같이 흔들린 '마음' 탓이지 '기술' 탓은 아닌 거다. 

     

    그동안 인식은 못하고 있었지만, 나름의 대응책을 두 가지나 세우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1) 유투브 안에 정체성 정해두기 

     

     

    빨간약 줄까? 파란약 줄까?

     

     

    끊임없이 뜨는 푸쉬를 지울지언정 무시하지도 않고, 새로운 기사나 광고도 호기심 가는 것은 꼭 확인해보고 

    신기한 어플도 늘 설치해서 써보기도 한다. 

     

    하지만, 공유 받은 유투브 링크나 추천하는 영상을 찾아보지 않는다.  

    알고리즘은 절대로 함부로 타지 않는다.

    무심코 잘못 누르게 되면, 그 이후부터는 보려고 한 적도 없는 영상들이 끊임없이 떠서 원치 않는 알고리즘의 파도를 타게 되는 것이 너무나 싫다. 

    좀 더 성의를 발휘해서 추천 영상을 '관심없음'으로 제외할 수 있기는 하지만, 자극적인 영상 제목에 나도 모르게 클릭하는 상황 자체를 안 만들고 싶은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유독 왜 유투브만은 까칠하게 굴고 있을까 자문해보았을 때, 유투브가 누군가에게는 즐거운 오락거리겠지만 

    나에게는 '중요한 정보의 장'이자 '좋은 선생님'이고, '동기부여 버튼'이라는 정체성을 정해놓았기 때문이었다. 

     

    직전에 읽었던 <초집중>을 읽은 감상 중,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가장 유용한 초집중 계약 방식은 '정체성 계약'이라고 개인적인 주장을 했었다. 

    2020/08/08 - [F3 책책책] - <초집중> 양육에 초집중 해 볼까

     

    유투브에서 자칫 잘못하면 날밤새도 끊임없는 추천 영상에 빠진다는 걸 체감하고, 

    책을 추천해주거나 동기부여를 해주고 공부를 하게 해주는 채널만 골라 구독하고 영상을 보니

    저절로 유투브는 '딴짓'보다 '본짓'에 가까운 어플로 바뀌었고, 그곳에 딴짓이 끼어들 수 있는 영상의 링크는 클릭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마치 유투브 알고리즘은 개인의 고유한 속성이자, 나의 감정을 나타내고 있듯한 느낌도 든다. 

     

    위에서 '테크는 ㅇㅇ 의 ㅇㅇ을 ㅇㅇ하게 했다. '라고 나의 감정을 요약한 문장들도

    휠 타입 스탬프처럼 사람의 정체성에 따라 매우 다른 조합의 답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2) SNS = 부캐의 탄생

     

    요즘 연예계에도 '부캐'가 유행이다. 

    무한도전 이후에도 최고MC임을 입증한 유재석씨만 봐도 여러 부캐를 보유하고 있다. 이제는 한 사람을 놓고도 다른 모습을 보여도 부캐라는 이름으로 설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SNS를 처음 접했을 때는 굳이 드러내고 싶지 않은 모습이 드러날지 모른다는 것에 불편해했다. 하지만 끌려가듯이 남들 하니까 하는게 아니라, 

    활용하고 싶다는 태도로 바라보니 SNS에서는 '되고 싶은 모습'으로 노력하면 더 빠르게 보여줄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일상 생활에서 나란히 같이 일하고 있는 동료와 내가 업무가 같다고 해서 생각까지 동일한 것은 아니다.

     

    온라인에 되고픈 모습을 적극적으로 노출하면 

    동일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교류할 기회가 늘어나고 

    그 느슨한 유대 안에서 빠른 기울기로 그에 가까워질 기회도 동시에 생긴다는 것이다. 

    '아이를 사랑하고 동시에 일도 놓치고 싶지 않은 엄마'이자, 

    '책도 읽고 서평도 쓰고 토론도 할 수있는 문화 공유자'가 되고 싶은 바램이 점차 나의 '부캐'가 되어가는 것이다. 

     

    실제로 일상에서는 실패도 많이 하고, 게으름의 늪에 빠지고 있지만

    티스토리에 만든 나의 부캐로 인해 씽크ON6기 모임에도 신청했고

    2주에 1권씩 읽고 서평을 쓴다는 혼자서는 엄두도 나지 않는 일에 도전하고 있다. 

     

     

    이런 2가지 환경설정으로 '지루함, 외로움, 화남, 멍청함' 의 감정이 더 쉽게 느껴진다. 

    적어도 새로운 기술이 또 나타났을 때, 감정에 허우적 거리지 않고 담담할 수 있을 거다. 

     

     

    p.s.: 이 책은 열린 결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신기한 이야기가 너무 많았다. 

    한편으로는 '왜 이 책이 유독 읽기 어려운가? ' 라는 것이 별개의 고민이었다.  

     

    테크에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했는지 감정의 변화를 친절하게 세세히 알려줬지만, 

    그래서 어떻게 이 감정을 다루어야 할지는 스스로의 몫으로 돌렸다. 

     

    드라마 조차도 열린 결말이면 안 끝난 것 같고, 내 추측이 맞을까 궁금하고 답답한 성격에 이 책은 다 읽었는데 '답은 네 안에 있지.'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끊임없는 물음표 속에서 '결론'을 다섯번쯤 읽고나서 조금 느낌표로 바뀌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비슷한기분이 들었을지 모르는 누군가에게 결론부터 읽어보는 걸 추천해보며, 책의 마지막 구절을 인용한다. 

     


    p. 524 -525

    감정의 역사를 살피다보면 감정은 타고났거나 자연적인 것이 아니고,
    또 우리만 가지는 게 아니라 널리 공유된 관습과 약속이 반영되어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그 관습마저도 변하며, 그 변화가 우리의 감정생활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보여준다.
    현대인들은 자신의 감정을 혼자 힘으로 바꾸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변화를 지속하기는 힘들다.
    변화는 사회적 차원에서 일어나며, 또 집단적으로 일어날 수 밖에 없다.
    우리의 감정은 개인만의 것이 아니라 사회적이고 정치적이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 우리가 살고 싶은 세상이 투영되어 있다. 
    ....(중략) ... 
    그 자아의 한계를 규정할 책임과 그 한계를 인정할 때 우리가 가장 인간적인 존재가 된다는 것을 깨달을 책임은 바로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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