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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대유행병의 시대>, 시의적절하여 할 말 많은 책1F 책책책 2020. 9. 7. 05:57반응형
씽크ON에 참여하면서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게 되는 것 같다.
이번엔 정말 '시의적절'한 <대유행병의 시대>라는 책이다.
코로나는 소리 없이 내 곁에 왔다.
지난 설 연휴, (회상하니 겨우 몇개월 전인데 까마득한 옛날 같은 기분이 든다.) 거리가 꽤나 먼 시댁까지 힘들지만, 다녀오는 기차 안에서 코로나19에 대한 뉴스를 처음 제대로 읽었던 것 같다. 시댁이 멀긴 하지만, 이렇게 다시 가기 어려운 곳이 될지 미처 몰랐다.
버스 타고 기차 타고 이동시간이 길면 아이가 힘들어 하니 밥도 먹고 쥬스도 사주고 중간에 택시도 타고 하며 돌아왔다. 신량이 너무 피곤했는지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부터 몸살기운이 있어보였다. 다음 날, 신랑은 열이 좀 나는 것 같다더니 체온계도 찾고 1339에 전화했다. 시부모님이 연세가 있으시니 감기이기만 해도 혹시 옮기고 왔을까 걱정하며 설마 코로나는 아니겠지란 마음으로 전화로 안내 받은 대로 검사도 받고, 회사 측에도 연락하여 자가 격리에 들어갔다.
다행히 코로나는 아니였고, 덕분에 신랑이 다니는 회사는 초기부터 철저히 대비하게 되었다.
집에서는 농담으로 회사에서 표창이라 해야겠다면 놀렸지만, 회사에서 마주치는 동료들이 정말 코로나 환자였던 것처럼 반응해서 힘들었다고 했다.
이 해프닝 덕에 어떤 감염병보다도 위기를 체감할 수 있었다. 코로나와 함께한지 벌써 7개월 차가 되었다.
무지했지만, 이번에도 운이 좋았다.
늘 모르는 것이 많다지만, 이렇게 감염병에 대해 무지했는지 인지조차 못했다.
코로나19가 이미 세계에 퍼져나갈 때 뉴스에서 처음으로 '스페인 독감' 에 대해 듣게 되었다.
사스, 메르스는 우리나라에도 감염자가 있었으나, 정말 얼마나 위험한지 체감이 안 되었다.
그저 환자가 늘어난다니 '걱정된다'는 감정을 느끼는 것에 그쳤다.
에볼라 바이러스는 여행으로 가볼 생각도 못한 아프리카니 정말 강 너머 불구경 하듯 했고,
지카 바이러스가 유행하던 시기에 지인이 여행 준비하다가 걱정하기에 꼭 모기기피제 챙겨야겠네요 라고 이야기 했던 기억 뿐이다.
르네 뒤보는 환경운동가들에게 "생각은 세계적으로, 행동은 지역적으로" 해야한다고 촉구했다. (p. 544)
르네 뒤보의 말대로 세계적인 생각을 할 필요성을 절감한다. 책을 다 읽고나니 감염병을 피해온 것은 단지 우연이었고, 운이 좋았음이 확실해졌다.
p264-5.
1960년대가 시작되기 전에 가정에도 에어콘이 설치되기 시작했다. / 이후 미국의 사무실과 가정은 모두 규모와 상관없이 냉난방 장치가 없으면 불완전하다고 여겨졌다. / 물론 당시에 냉각탑과 에어컨이 감염 질환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 감염병은 아니였지만,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질환이 생각나게 했던 '재향군인병'
p.381
전 세계가 "매우 운이 좋았다"는 것이 그의 견해였다. 앤더슨 (역학전문가)는 사스의 전염력이 낮았다는 점, 그리고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이 자가 격리와 대대적인 검역 같은 "상당히 엄격한" 공중보건 조치를 도압할 수 있었기 때문에 재앙을 막을 수 있었다고 보았다.
-> 사스까지는 비교적 운이 따랐지만, 결국 코로나19는 대확산으로 Pandemic까지 이르렀다.K-방역은 과연 성공한 걸까?
다행히도 한국의 질병관리본부를 포함한 관계부처가 중국의 발표가 나자마자 강력하게 방역에 나선 덕에 의도치 않게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계기가 되었다.
'K팝'처럼 첫글자를 따서 'K-방역'이라 불릴 정도로 질병관리본부 주도하에 이루어지는 빠른 검사절차와 드라이브 스루 검사, QR코드 체크인, 위치정보를 이용한 역학조사 등의 창의적인 방역조치들과 다수의 국민들의 협조적인 태도의 효과로 대규모 확산세를 (다른 나라들 대비) 잘 막고 있다고 보인다.
그렇지만 이 정도면 성공적인 방역이라고 감히 해도 되는 걸까?
시에라리온, 라이베리아 @구글지도 책을 읽으면서 확실히 알게된 국가 두 곳이 있었다. '시에라리온'와 '라이베리아'.
에볼라 바이러스가 극심하게 피흘리게 만든 두 나라. 이 책이 10개의 장으로 꼼꼼히 근대의 유행병들을 다루어 주는 동안, 극단적인 무지와 공포가 확산세에 가담한 경우가 에볼라 바이러스 같다. 병독성이 강한 에볼라는 진행되면서 세포들이 혈관 내부에서 서로 달라붙어 입과, 코, 항문, 질 심지어 눈에서도 출혈이 생기는 상상만으로도 섬뜩한 증상을 보인다. 증상과 더불어, 약초와 환자와 접촉하면서 치료해주는 '전통적 치료사'에게 진료받는 과정과 장례 시에 애도하고 매장하는 의식으로 인해서 감염이 확산되는 것을 막기가 어려웠다. 감염이 예상되는 사람들이 치료를 거부하는 사태와 동시에 진단할 수 있는 PCR 장비가 나라에서 한군데 뿐인 이곳은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기나긴 내전을 겪은 곳들이었다.
세상은 좋아지고 있지만, '양극화'는 여전히 위험한 요소다.
두 나라에서 사람들이 무지와 공포심에 의해 그렇게 행동할 수 있었겠다라는 생각은 들지만, 개인 수준의 문제가 아닌 국가적 단위에서 국민들의 생명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는 증빙밖에 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번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기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에도 해외에서는 죽음이라도 불사한 듯이 대규모 시위를 벌이는 장면도 볼 수 있었다. 그들이 무모할 정도로 시위에 참여한 것은 에볼라 유행 때 도망간 '시에라리온와 라이베리아'의 사람들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자본주의가 기본값인 현재, 경제 봉쇄는 곧 죽음이라고 느낄 만큼 절박한 사람들이 실제로 거리에 나와서 목숨으로 도박을 하는 셈이다.
우리 나라는 전체적으로는 국민들이 방역지침을 잘 따라주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양극화'가 더 심해지고 있는 중일 것이다.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과 복지정책이 당연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코로나 치료제 및 백신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더 벌어진 격차를 얼마나 줄일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당장 파리 날리는 가게에 가서 '이런 유행병은 또 다시 나타날 겁니다. 그러니 충분히 대비해야 합니다'라고 이야기 한다면, 무사히 가게를 나올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피해를 가장 많이 입은 사람들이 가장 정확하게 유행병에 대해 알아야 다음에 안전할 수 있을 거라는 사실이 K-방역의 큰 과제란 생각이 든다.
전문가들에게는 편견없는 사고를, 대중들에게는 과학적인 사고를 추천
코로나19 이후로, 유행한 신조어 중 '동학개미운동'이 있었다. 이 현상에서 특이한 점은 단순히 많은 자금이 주식시장으로 옮겨간 것이 아니다. 그 많은 자금을 개인들이 직접 투자하겠다는 것이 특징이다. 다시 말해, 전문가라고 여겨진 증권가 사람들 대신 내 돈은 내가 굴리겠다는 것이다.
전문가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기 좋은 분야가 꼭 주식 시장만은 아니다.
p. 42-43. 리하르트 파이어가 독감을 일으키는 "흥미로운 원인"을 발견했다고 발표 / (발표 내용을 전제로 한 실험들이 실패했고) 독감이 발생할 때마다 그리고 독감 환자마다 균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불편한 사실을 밝혀 코흐와 그 제자의 권위에 감히 도전할 과학자는 거의 없었다.
p. 56. 파이퍼의 주장을 의심하는 목소리보다 독감은 세균 감염 질환이라는 과학계의 견해가 너무나 지배적인 상황이라, 과학자들은 자신들이 사용하는 실험도구와 방법을 의심한 것이다. (1장. '스페인 독감')
p. 161.
독감이 세균에 의한 병이라는 파이어의 틀린 주장처럼 노카르의 틀린 주장도 혼란을 확산시켰다. 의학계 인사들, 공중보건 당국은 장티푸스와 비슷한 인체 질병이 앵무새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견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p524. (CEPI (유행병 대비 혁신 연합)에서 조사한 2019년의) 보고서에 따르면, ... "5,000만명에서 8,000만명의 목숨을 빼앗고 세계 경제의 약 5퍼센트를 휩쓸 만한 영향력을 가진, 확산속도가 빠르고 치사율이 매우 높은 대유행병이 나타나면 크게 당황했다가 다시 경시하는 악순환이 일어나도록 너무 오랫동안 내버려 두었다. (...) 이만큼 시간이 지났으면 이제 행동해야 한다.
p. 525. 2019년 10월 19일 뉴욕에서 열린 한 선행 훈련에서도 ... 존스 홉킨스 보건안보센터가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 세계경제포럼과 협력하여 마련한 이 훈련의 목표는 '코로나 바이러스 관련 폐 증후군(CAPS)'을 일으키는 가상의 바이러스로 대유행병이 발생할 경우에 대한 모형 분석이었다. CAPS의 대유행은 박쥐에 감염된 신종 코노라 바이러스가 브라질의 한 농장에서 사육되던 돼지에게 옮으면서 시작되는 것으로 가정했다. ... 이 모형에서 문제의 바이러스에 면역력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으므로 전 세계의 인구의 80퍼센트가 감염된 후에야 대유행이 끝날 것이라는 예측 결과가 나왔다. 그러려면 총 18개월이 소요되고, 전 세계 인구 중 6,500만명이 사망할 것으로 예상됐다.
(* 2020.09.06 현재, 전세계 확진자 수는 2690만명, 사망자는 88만명이다)스페인 독감의 경험에서 질병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질 거라는 의학자/과학자들의 자만감이 꺾였다고 하면, 현재는 필터를 통과하는 바이러스도 놓치지 않을 기술과 심지어 유행병의 모델을 만들어 볼 능력까지 갖췄지만 이번에야 말로 그 어떤 유행병보다도 전 세계에 고루 퍼졌다. 질병은 세계화 덕에 무한정 퍼져나갈 가능성이 생겼지만, 질병에 대한 지식과 대응방침은 전문가의 손을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과학자라면 편견에 입각해서 처음 세운 가설에 맞추기 위한 실험을 하지 말하야 하고, 새로운 관찰 결과가 있다면 끊임 없이 개선하는 태도를 가져야 하겠다.
반대로 대중들은 과학적인 사고력을 높일 필요가 있다. 유행병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태도로 정보를 해석하는 능력이 없다면 AC(After Corona)라고 불리우게 될지 모르는 이후 뉴노멀의 세상에서 적응이 어려울 것이다.
마지막 감상 & 행동으로 옮길 것은?
의학 역사 분야책을 읽는 것은 두번째인데, 머리 속에 입력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감염병에 대한 관심이 극대화된 상태였기에
그리고 뉴스로 들은 감염병들 대략의 정보가 있었기에 책장을 넘기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결코 내용들이 가볍지 않았다.
책이 접히고, 밑줄친 부분으로 빼곡하다.
에이즈 부분을 읽다가는 답답해서 옆팀 동료한테 '레트로 바이러스가 뭔지 설명해주실 수 있어요?' 라니까
웃음과 함께 '어디서부터 이야기해 드려요?'라는 답을 들었다.
자꾸 T세포, 프리온, 사이토카인, CD4세포, RNA바이러스, RT-PCR, ELISA, Western blot, ACE-2 등 얼핏 들었지만 필요한 만큼만 알고 지나쳤던 것들이 우르르 쏟아졌다. 전공은 아니기는 하지만 늘 대충 알고 있으니 답답했었는데, 겉핥기식에 그치더라도 기본적인 용어는 정리하고 공부할 필요가 있겠다.
이 책과 비슷하게 접한 책이 <두번째 지구는 없다> (타일러 라쉬 저) 였다.
기후 변화나 인수공통감염병 (<대유행병의 시대>에서는 스필오버 (종간전이)라는 표현이 더 많이 나온다) 의 발병 모두
결국은 인류가 지구와 다른 생명체들과 유기적으로 살아가지 않은 탓이라는 교훈을 얻었다.
'공존'을 하기 위한 작은 행동을 실천으로 옮겨야 겠다.
이 책을 읽다가 온라인에서 신간에서 이재갑 교수, 강양구 기자가 쓰셨다는 <우리는 바이러스와 살아간다> 를 발견했다. 다이나믹하게 흘러간 코로나19에 대한 대응의 복기와,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혐오, 공공의료, 연결과 밀도 등' 에 대한 고민과 사유를 꼭 접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p.s. 아이 놀이터에서 노는 걸 보며, 핸드폰에 서평쓸 내용 개요를 짜고 있었는데 ... 옆에서 이야기 하는 두 초등학생 이야기가 정말 슬프다
"...엄마아빠가 집에 친구랑 오지 말라구 해서. 오빠가 절대 코로나 걸리면 안된데. "
"자꾸 놀러가서 미안해. " "아냐, 이번주에 너하고만 같이 놀았어. 괜찮을꺼야. "
수험생 오빠를 둔 동생은 코로나19가 아니였어도 힘들었을 것 같긴 하다. ㅎㅎ
뉴노멀시대에는 수험생일 때 보다 평생 공부하는 분위기로 바뀌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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