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히스토리 책은 사실 첫 도전인데, 한치의 오차도 없이 한장 한장이 묵직했다. 진짜 책 한권으로 성취감 레벨을 엄청 올릴수도 있지만, 자괴감에 빠질 수도 있을 것 같다 ㅎㅎ 어떤 의미로든 포기 않고 읽은 스스로를 칭찬해주며 시작해야겠다. 쓰담쓰담~
매우 방대한 책이라 어떤 방향으로 보아도 놀랍다. 평소 억대 숫자도 즐비한 세상이라 '5만'이라는 숫자 자체는 크게 느껴지지 않지만, '5만년' 중에 내가 아등바등한 시간이 얼마나 되는가에 대해 생각해보면 거대한 역사의 존재에 압도되고 만다.
이 책에 대해서 한 단어로 요약 하자면, '상호소통' 한 구절로 평을 하라면, '재독 필수' 이라 해야겠다.
저자는 세가지 요소가 함께 얽힘으로써 인류 이전의 동물들과 다른 역사를 만들어 낸 것으로 평가한다. 역사의 세 가닥- 환경, 인간의 도구, 언어를 통한 상호소통/상호연계성-로 무엇을 읽어낼 수 있을까?
p103 거대 서사는 하나의 단일한 전체이고, 거대 서사의 모든 부분은 나머지 모든 부분을 강화하는 데 기여한다. 맥락이 가장 중요하다.
1장의 마지막에서 '맥락이 가장 중요하다' 라는 문구에서 절로 소름이 오소소 돋는 기분이었다.
어떤 것을 보고 듣더라도 결국 개인의 경험과 가치에 의해 재해석 된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이렇게 방대한 책은 결국 나만의 관점으로 읽힐 수 밖에 없고, 내가 겪어온 경험과 가치의 기준만큼 밖에 읽어낼 수 없을 것이다. 어떤 점에서 욕심을 내려놓고, 평소 의식하고 있는 되는 주제들에 대해 좀더 집중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과학 그리고 화학
이 책을 읽으면서 '과학'이라는 표현으로 학문화 되기 시작한 것은 45억년 지구의 역사 중 인류의 5만년의 역사만큼이나 참으로 짧은 것이구나에 놀랐다. 간혹 과학 분야의 교양서를 읽을 때 무언가 확 뛰어넘어 버린 듯한 느낌을 받았었다. 그렇지만 도구들도 만들어서 썼고, 청동기/철기가 있으니 제련기술이 있다면 과학도 어느 정도는 같이 발전했다고 생각했지만 아주 개별적으로 밝혀낸 사실들의 집합에 그쳤던 모양이다.
'과학' 이라는 것이 신적 존재들과 배치 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특히, 내 전공인 화학은 갑자기 연금술에서 툭 튀어나온 것처럼 묘사되는 기분이었다. 자연철학자들을 거쳐, 인도에서 수학이 발달했다는 서술 이후에 서기 800년 중국 당 왕조에 이르러서야 화학에 대해 언급된다.
p. 205. 주술에 발을 슬쩍 담근 도교 승려들은 원시 과학자로 탈바꿈했다. 그들은 기본 금속을 금으로 바꾸는 방법을 찾다가 최초의 화학 원리를 발전 시켰다. ~ 주술적 능력을 선사하는 약을 찾아 나서는 과정에서는 800종 넘는 약초를 수록한 약전을 편찬했다. 반어적이게도, 영원히 사는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는 우연히 화약을 발명했다.
p. 218~219. 무슬림들은 이성을 통해 진리를 정립하는 수단인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과 우연히 마주쳤을 때 황홀감을 느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선례에 따라 무슬림들은 훗날에 과학으로 알려진 자연철학 분야에 조금씩 발을 들여놓았다. 당시 중국인들은 나침반, 시계, 외바퀴 손수레 같은 실용적이고 기술적인 혁신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었다. 반면 무슬림 철학자들은 물질적 실재를 추동하는 기본적인 기본 원리를 파헤치는 데 관심이 더 많았다. ~ 아라비아인들은 물질변화에 관한 연구분야를 '알키미야[al-kimiya]'라고 불렀다. 알키미야는 합금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크라마'에서 파생된 아라비아어였다. 훗날 서양에서는 그 연구 분야를 연금술[alchemy]로 불렀고, 오늘날 우리는 그것을 화학[chemistry]라고 부른다. 추상적 기본 원리를 탐색하려는 태도는, 추상적 기본 원리가 가장 완전하게 구현된 수학을 향한 관심과 맞닿았다. ~~ 페르시아의 수학자 알콰리즈미는 그 값 (특정한 미지수 x를 의미) 를 계산하는 체계적인 방법을 고안했고, 그것을 알자브르[al-jabr]라고 일컬었다. (오늘날 우리는 그것을 대수학(alge-bra)라고 부른다. )
최대한 짧게만 인용했는데, 너무 충격적인 사실들이 많았다. 중국에서 동물이 섭취하는 것을 참고하여 약초와 독초를 가려내고 약전을 만들었다하는 이야기는 알고 있었지만 그게 도교 승려들과 관련이 있었다니, 화약이 함께 발명하였다니... 실용적인 측면에서 중국이 발달하였지만 현상과 실재에 대한 '과학적' 측면이 없었다면, 역사 이래로 맥락을 함께 공유한 우리 역사도 영향이 있었겠다는 간접적인 해석이 가능해졌다. 이학 계열로 대학 진학한 이후에도 도무지 '수학'과 '물리'는 가까워지지 못해 여전히 어렵게 느껴지는데 저 당시 아라비아인들에게는 현상에 대해서는 화학적으로 접근했고, 미지의 추상 개념은 수학적으로 접근했다니, 내가 익힌 것은 단편적인 지식에 불과하지 과학적인 태도는 많이 부족하구나 반성할 수 밖에 없었다.
4만5천년 전 '진정한 언어'의 탄생이 구석기 시대의 동굴 벽화 같이 이른 시기의 그림도 상당한 수준으로 남게 만든 것이었다면, 대체 과학이 2천년도 안되어서 지금 같이 상당한 수준으로 비약하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p317-318. 중국 장인들의 솜씨(도자기,대운하, 차 등)는 이방인들 사이에서 흠모의 대상이었지만, 명왕조 시절에는 특별히 언급할 만큼 중요하고 새로운 과학적, 기술적 돌파구가 없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그런 돌파구 없어도 중국이라는 별자리의 왕성한 활력은 끄떡없었기 때문이다. ~ 그런 환경에서 혁신은 호응을 얻지 못했다. ~중국은 내향적일 뿐 아니라, 회고적인 사회가 되었다.
P 339-343. <과학이 출현하다> 중 ~아직 과학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과학자일 수 없었다. 과학의 개척자들은 모두가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개신교 신자들의 공통점은 신앙이 아니었다. 그들의 공통분모는 더 참된 것으로 보이는 진리를 향한 뜨거운 욕구, 즉 새로운 것을 기꺼이 시도하려는 태도였다. ~진보의 서사-'더 나은 것'이 항상 가능하다는 확고한 믿음-는 설득력 있는 과학적 원리를 탐색하는 작업의 원동력이었다. 마침내 진보의 서사는 어떤 대상을 과학적 설명하는 것이 바로 그 대상을 설명하는 것과 다름 없다는 확신을 낳았다. 세월이 흐르면서 진보의 서사는 인간의 도구가 지속적이고 극단적인 방식으로 개량되는 계기가 되었다. 먼 훗날 진보의 서사는 인간과 도구간의 관계를 바꿔놓게 되었다.
p. 416-417. 도구와 기계는 구별해야 한다. ~ 도구는 인간의 작업을 도와준다. 기계는 직접 작업을 처리한다. ~이따금 역사학자들은 과학과 기술이 별개의 경로를 밟으며 독자적으로 발전한다고 주장한다. ~ 그럴싸한 관점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사실 유럽인들이 과학을 수용하던 그때, 아시아에서 개발된 독창적인 장치가 유럽에 전래되고 있었다. 과학과 기술이 중첩하자 창의력의 들불이 유럽 대륙 전역에서 타올랐다.
중국의 뛰어난 문화와 심지어 놀라운 기술을 많이 보유하고 있었지만, 찬란한 문화를 널리 자랑하기에는 바빴어도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거나 더 혁신적인 만들어 낼 필요성에 대해서 느끼는 바가 없었다. 어찌보면 대단한 자긍심이 독이 된 것이리라. 심지어 성리학적 토대는 조선에도 전달되었고 그를 기반으로 한 당쟁의 결과는 어찌 보면 서서히 조선을 좀먹어갔다. 조선 초에 이미 훈민정음이라는 고유한 언어체계와 실용적인 과학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었던 것에 비하면, 성리학과 같은 사상적인 측면을 받아들이면서 과학의 경우도 중국의 발전만을 쫓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반면에, 개신교도 들의 '진보적'인 행보는 '과학적 사고'를 뿌리내리게 했고, 아시아의 기술들을 더해 인간을 도와주는 도구보다 스스로 작업을 하는 '기계'를 만들게 된다. 물론 이런 일들이 한 순간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지만 '과학'의 측면에서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권이 앞서나갈 수 있는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지만 어떤 방향으로 사고하는 가의 차이가 '과학 발전'의 기울기를 많이 다르게 만들었다고 본다.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되는 기간만 되면, 늘 뉴스에 우리는 언제쯤이나 되야 탈 수 있냐는 기사가 한번씩은 나온다. 이젠 이 기울기는 완전히 바꿀 수 없는 것일까?
과학이 발전했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생명에 대해서 알아낸 것은 5만년의 역사에 대해 파악한 것보다 작은 부분일 수도 있다. 내가 하는 일과 관련해서 예를 들어본다면, 체내에서는 물을 반응 용매로, 상온보다 약간 높은 36도 정도에서 무수한 대사 작용(반응) 들이 일어나고 있다. 의도적으로 하는 유기 합성에 있어서 '물'의 존재는 부반응의 요인인 경우가 대다수고, 상온에서 이루어지는 반응도 실질적으로 많지 않다. (합성 내용을 고려하지 않고 언급하기 조심스럽지만, 실험실에서 이루어지는 반응 온도의 범위는 무려 -78도부터 200도 (그 이상의 경우도 있다) 정도다. 많은 경우 열을 가해서 진행하게 된다. ) 원래도 부족한 실력이지만, 난 이 사실만 떠올리면 어떤 합성을 성공한다해서 겸손해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다.
혼자 작업을 할 수 있는 기계의 시대 또한 지나갔다. 우리의 지능을 뛰어넘을 수 있는 AI가 나타날 시기가 다가오고 있고, 인공지능을 제어할 만한 능력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이미 AI를 활용한 기업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고, 일부 공동연구의 가능성을 타진해보고 있지만 AI에 대한 인식 부족ㅡAI는 요술의 수정구슬이 아닌데 말이다ㅡ으로 '잘못된 질문'에 따른 '잘못된 답변'을 받고 있는 느낌이 든다.
그런 점에서 여전히 앞으로도 맥락을 잘 읽고, 서로 소통하는 능력은 과학만이 아니라 어떤 분야에든 가장 중요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P534.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위헌은 언제나 '지금 당장'이 특히 심각해 보이는 듯 싶다.
5만년의 역사를 돌아봐도 위험은 언제나 '지금 당장' 이었다.
그 누구도 요즘 경제 상황이 좋다고 말하는 법이 없듯이 (늘 지나서야 그때가 호황이었다고들 한다) 별개의 신화적 기포에 갖혀있으면 제대로 맥락을 읽을 수 없다. 이질적인 타자의 시각을 어렴 풋이나 이해 하는 것이 이상적 형태의 세계공동체라는 별자리에 가까워지는 것이겠지...
'일독'으로 읽었다고 하기에는 너무 아쉬운 책인 것 같다. 저자가 무슬림 가문에서 태어나 동생이 심취하는 것을 보고 이슬람교에 대해 연구했다고 하는데 나로써는 가장 배경지식이 없는 내용이라 맥락을 이해한다고 보기 어려웠던 것 같다.
우리가 역사를 배울 때 연대기 순으로 그것도 특정 지역으로 쪼개어서 배우면서 그나마 근접한 (현재의) 중국, 일본의 역사의 맥락만 어느 정도 알고 있을 거라 생각은 했지만, 너무 빠져있는 연결 고리가 많은 것 같다. 일종의 테마를 정해서 읽는다면 재독을 한다면 또한 새로운 책으로 다가올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