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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평 [싱크 어게인, 애덤 그랜트 저] 다시 생각할 시간
    1F 책책책 2021. 3. 31.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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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싱크 어게인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세상 ‘모르는 것을 아는 능력’도 지능의 일부이다확증 편향, 소망 편향 등 스스로를 무너뜨리는 ‘확신의 함정’에서 벗어나야 하는 이유전작 『오리지널스』에서 대세

    www.yes24.com

     

     

    1

    매력적인 신간 

     

    <기브앤테이크>, <오리지널스>로 너무도 유명한 애덤 그랜트의 신작이 출간되었다. 다른 표현 빌릴 필요 없이, 2월에 원서가 출간되었다고 해서 번역본은 언제 볼 수 있을까 했는데 벌써 나오다니 대단할 따름이다.  심지어 그의 전작에 대한 부분도 중간에 언급되고 있어서 경제경영서이지만 소설의 연작, 시리즈물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최초의 온라인 커뮤니티를 만들었던 학생들은 저커버그의 성공을 보고는 무척 속이 쓰렸을 것이다. 아니, 속이 쓰렸음이 확실하다. 이렇게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은 내가 그 학생 집단 모임을 만들었던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이기 때문이다. " (p.17) 

    "<오리지널스> 에서 자기 의견을 분명하게 가지되 거기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나는 그 뒤에 마음을 바꾸었다. "

     책에 언급하듯이 애덤그랜트는 저자 스스로가 '다시 생각하기'의 정석을 보여주는 인물인 것 같다. 누구나 좋은 생각을 생각해낼 수는 있다. 하지만 실천과 실행을 한 사람을 생각만 한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이 여기서도 드러나는 것 같다. 

     

    <기브 앤 테이크>는 기버와 매처 중에서 기버가 실패할 확률도 높지만, 성공률도 더 높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2009년 온라인으로 아이웨어를 판매하는 '와비파커' 를 창업한 창립자 가운데 한 명이 애덤 그랜트에게 사업구상을 들려줬을 때 , 실패할 거라고 예상했던 그 자신의 사례에서 잘못된 결정을 내리게 된 이유를 추적하려 했다. 그래서 내면의 창의성이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 성공으로 구현되는가에 대해 <오리지널스>를 저술했다. 최근 '좋은 생각 혹은 아이디어'를 얻는 방법이나, '실행력을 높이기' 위한 방법에 많이 집중해있었는데, '다시 생각하기'를 놓쳐서는 안된다는 중요한 지점을 알려주는, 근래 본 가장 매력적인 신간이었다.

     

     

    2

    '확신에 찬 겸손함'에 '도전 네트워크'를 추가하라

     

    '전도사, 검사, 정치인'의 모드로 말하기에 빠져버리면, 처음 가진 '확신'의 감옥에 갇혀버릴 수 있다. 자신의 의견이 위험해질 때는 전도사가 되어 설교를 할 것이고, 다른 사람의 논리에서 오류를 발견하면 검사가 되어 자신이 옳음을 입증하려 할 것이고, 누군가의 동의가 필요하다면 연설, 언론플레이, 로비와 같은 정치공작을 활용하는 정치인의 모습으로 변신할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려고 하는 타인과의 대화에서 정체모를 불편함을 겪는 일이 간혹 있었는데, 이 세 가지 모드 중 하나 또는 세 가지 모두 만난 것이 분명하다. 

    (p.71) 어리석음의 산

    직업이 과학자인 사람에게 다시 생각하기는 필수적 요소라고 하는 부분에서 잠시 움찔 했다. (p. 33) 요즘 더닝-크루거 클럽의 회원으로 가입되었거나, 어리석음의 산에서 못 내려오고 있는 건 아닌지 고민해야할 지점에 서 있다. 한 동안 생각한 가설대로 실험했지만, 설계를 다시 고려해야 할 법한 결과에 당황스러웠다. 다행히도 과학자로서의 역량이 부족하다는 걸 익히 알고 있어 '안락의자 쿼터백 신드롬'에 빠질 가능성은 없어보이긴 한다. 도표에서 보이듯이 초심자가 아마추어로 나아갈 때 얻어진 얄팍한 지식은 어리석음의 산에 깃발 꽂기에 딱 적당하다. 2016년 아이슬란드 대통령선거에서 지지율 1프로에서 시작해 최종적으로 유권자의 4분의 1, 득표율 2위를 기록한 할라 토마스디토르의 경우처럼 '가면 신드롬'에 가까워 지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충분한 역량을 가졌음에도 비범한 겸손을 가질 수 있는 사람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궁금해지면서, 약점을 극복하게 해 줄 '확신에 찬 겸손함'만은 붙잡고 있어야 한다는 다짐을 해본다.

     

    (참고: 더닝-크루거 클럽의 첫번째 규칙은 자기가 더닝-크루거 클럽의 회원임을 모르는 것이고, 파이트 클럽의 첫번째 규칙은 파이트 클럽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 것이다. )  

     

     어렸을 때 라이트형제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족이지만 두 사람이 공동으로 일한다는 게 가능할까라고 아주 작은 의구심을 가졌던 기억이 난다. 그들은 의견불일치를 생산적이고 유쾌한 것으로 여기는 가족 분위기에서 자랐고, 과학자 모드에 입각해서 서로 다른 해결책이 성공 또는 실패하는지 자체보다 해결책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 탐구하는 사람들이었다는 이야기를 통해 오래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스스로는 검증하고 개선하려고 했지만, 여지껏 의견불일치에 대한 불편한 감정 때문에 '도전 네트워크'를 구축해보지 못했다. 저자가 언급한 대로 과학계에서 일한다면 논문 평가 시 동료 평가를 받을 수 있다. 그것 뿐 아니라, 소속된 연구소, 국가 같은 집단의 규모를 넘어서 글로벌하게 평가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전-지구적인 평가로 다시 생각하기에 비교적 쉽게 접속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그럼에도 일상 속에서의 대인 관계는 공정한 평가보다는 좋은 게 좋은 이야기만 이어 나가려고 해왔다는 점에서 나만의 '파이트 클럽', '도전 네트워크'를 구축할 필요성을 느꼈다. 물론, 지인들로 도전 네트워크를 구성한다면,  애덤 그랜트에게 애덤 그랜트의 저작을 읽어보라는 같은 웃지 못할 조언은 못 하겠지만. (아, 아예 이전 결과를 펼쳐 놓고 적나라한 품평회에 들어갈 수도 있겠다.)

     

     

    3

    개인 간의 다시 생각하기를 '유도'하기

     

     

    "이 사람은 협상 상대방에게 무엇을 생각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상대방에게 함께 춤을 추자고 부탁할 뿐이다. 바로 이것이 하리시 나타라얀이 앞에서 인용한 토론에서 보여주었던 바로 그 모습이다. " (p.169)

     

     

     31살에 이미 국제토론대회에서 30번 넘게 우승한 하리시 나타라얀과 AI 영재, 데브라 조 프렉테트의 토론 부분을 정말 여러번 곱씹었다. 사실, '토론'이 어떻게 하는 건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독서 모임(씽큐ON) 을 통해서 줌으로 토론도 해봤지만, 책에 대한 이야기를 다양하게 나누다 보니 어렵다기 보다 서로 의견을 듣고 이야기 하는 것 자체가 즐거웠다.

     하지만 찬반의 대립 의견을 두고 진행하는 토론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지금까지 해본 토론에서는 의견 불일치에서 춤을 추기보다는 창을 들고 싸우자는 듯이 덤비기에 급급했던 것 같다. 이런 빈약한 토론 실력으로 일을 하다 보니 적절한 요청을 하는 것인데도 상대의 마음까지 움직이지 못 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실험이 과학의 영역이지만, 결국 실험도 사람이 한다는 점에서 필요한 실험은 의도대로 진행되었지만 필요성까지 확실히 받아들이게 공감 시켜야 보다 정확하고 좋은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 원하는 자원들을 지원받고자 하면 완벽한 설득까지는 아니여도 적당한 협상은 가능해야 하는데, 자꾸 방어적이고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고 뒤돌아서 '윽, 실패. '라고 후회해왔다.

     

     

    "잘 듣는 것, 즉 경청은 단지 말을 적게 하는 것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 이상이다. "  (p. 250)

     

     

      조금 더 구체적으로 경청 자체는 자신이 있었는데, 적절한 질문으로 이어지게 만드는 능력이 부족한 것 같다. '백신을 속삭이는 사람'과의 동기 강화 면담을 통해 유아의 백신 접종을 이끌어내는 장면에서 구체적으로 부족한 지점이 '반영적 경청' (상대방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도, 상대방의 생각과 느낌을 재구성하여 상대방에서 전달하고 확인하는 것, p.235)과 연관됨을 알았다. 접종을 하지 않아 아이가 홍역에 걸릴지 모른다는 사실은 두렵지만, 부모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그 결정을 받아들인다고 전하면서, 부모는 다른 사람에게 통제될까 느끼는 압박감과 수동적인 방어 모드를 내려놓게 해준다. 접종 거부를 한 적은 없지만, 아이를 갓 낳고 아무것도 어찌 해야 할지 머뭇거리다 보면 혼나고 있는 느낌을 받아본 적이 있어 더욱 공감이 되는 사례였다.

     

     

     

    4

    '평생 학습 공동체'에 접속하기

     

     

    여전히 보여주기식 SNS는 시간 낭비라 생각하지만, 새로운 공동체의 형태가 온라인 상에 존재할 수 있다는 걸 알아가는 중이다. 기존에는 소속된 특정 조직에 한정된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팬데믹 이후로 온라인으로 할 수 없는 것은 거의 없다는 것이 확인 되었다. 개인적인 판단으로 학습 및 자기 계발을 목적으로 모인 이들이 '새로운 공동체의 형태'로 발현되고 있다는 판단을 하게 한다.

     

    그렇다고 기존의 사회는 도태되는 것일까? 메타버스가 형성된다고 해서 실제 사회의 소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거울에 비춘 모습처럼 사회의 확장에 가깝다. 여전히, 우리는 다시 생각하기를 사회로 확장해서 훨씬 더 근사한 세상을 만들기를 추구할 수 있다. 

     

    "이것(이분법 편향(binary bias))은 복잡한 연속체를 두개의 범주로 단순하함으로써 선명성과 종결성을 구하려는 인간의 기본적인 성향이다. "(p.261)

    "뜨거운 쟁점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대화는 절실하게 미묘한 차이가 필요하다. 우리가 전도사나 검사, 혹은 정치인처럼 행동할 때 현실의 복잡성은 불편한 진실로 비칠 수 있다. " (p. 291)

     

    세상이 둘로 나뉜다면 너무 편리하겠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그보다는 많이 복잡하다는 걸 누구나 인정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첨예한 쟁점에 대해서는 종종 이런 일반적인 사실도 잊고는 한다는 문제가 있다. 저자는 문제에 대한 다양한 모든 관점을 접함으로써 문제의 복잡성에 대한 이해을 갖추게 되면 이분법적 편향 버릴 수 있다고 알려준다. 복잡성을 인정한다는 것은 (발언자의) 확신이 상대적으로 낮아보일 수 밖에 없지만,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고, 더불어 호기심을 가지고 대응하게 해준다. 이 때도 복잡성을 과학자 모드로 수용한다면 더 깊은 이해와 발전으로 나아갈 수 있다.

     

    "좋은 교사는 새로운 생각으로 인도하지만 위대한 교사는 새롭게 생각하는 방식으로 인도한다고 나는 믿는다. " (p. 322)

     

    교과서는 어렸을 때는 자연 법칙만큼 확실한 진실로 믿었던 것 같다. 하지만, 교과서도 틀렸을 수 있다는 다시 생각하기를 심어주는 것은 능동적인 학습 방식에서 충분히 가능함이 확인됐다. 그럼 능동적인 학습이 주입식/강의식 학습보다 효과적이었을까? 그랬으면 상당히 드라마틱하고 해피엔딩 같았을 테지만, 아니다. 효율은 강의가 더 높았다. ( 어딘가 <기브앤 테이크>를 연상시키는 대목이었다.) 결국, 진짜 공부는 재미없다. 단지 지금 공부하는 것 밖에, 공부에는 왕도가 없다. 그렇지만 이 책을 접한 만큼, 이제 물고기를 잡는 방법 그 넘어도 생각해보는 공부법으로 학습해보기 가장 적절한 시점이다.

    다시 생각하기 점수판 (p.346)

     

    조직 내 다시 생각하기를 위해서는  '심리적 안정성'이 갖춰져야 한다. 빌 멜린다 게이츠 재단에 일한다고 생각해봐라. (그 자체가 벌써 쿨~하지만) 어떤 제안을 하거나 특정 프로젝트를 책임지겠다고 입이 떨어질 것 같지 않다. 하지만 성과보다 학습을 중시하는 문화를 형성한다면, 결과물을 단순히 성공/실패로 나누지 않고 행운이 작용한 부분, 개선이 가능한 부분, 똑똑한 실험으로 나누어 인지할 수 있게 된다. 단기적으로는 성과 중심의 조직이 성공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학습을 보장하는 심리적 안정성을 갖춘 조직이 결국 후회를 조금 하게 될 것이다.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는 지식이나 의견은 폐기할 수 있는 유연성을 가지려고 하면 실제 사회에도 평생 학습 공동체가 불가능한 것도 아니라는 것 같다는 희망을 품게 해준다.

     

     

     

    5

    경로가 아닌, '정체성' 다시 생각하기

     

     

    앞서 다시 생각하기가 머리를 다소 아프게 했을 수 있지만, 책 전체를 완독할 생각이 없는 사람에게도 결론 부분은 읽어주고 싶다.

     

     

    " 다 컸을 때 뭐가 되고 싶은데? 이런 질문은 성장이 유한한 것처럼 말한다. " (p.362)

     

    애덤 그랜트와 나 사이에 하나 유일할 것 같은 공통점을 찾았다면, '커서 뭐가 될거냐?'는 질문을 싫어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저자가 예시를 든 사촌동생 라이언의 이야기가 꼭 나의 경우처럼 공감되었다. 나는 그보다는 약간 일찍 정체성을 찾기 시작했던 것 같다. 대학원에 들어가서 5학기가 되던 해였다. '앞으로 5년 뒤에 무얼할 것 같냐? 미래의 대한 계획이 세워져 있냐?'고 조언해주셨던 옆방 교수님의 질문을 엄청 싫어했었다. (교수님 아니고, '질문'말이다.) 질문을 들을 직후에는, 미래에 대한 대비를 할 수 없는 무능, 무력함과 동시에 계획을 세울 시도도 하지  않은 게으름을 괴로워했다.

     

    이후에 다시 그 질문을 떠올렸을 때는 예상 가능했던 어떤 것과도 다른 상황 속에 놓여 있었다. 덕분에 계획을 세웠다고 해도 그대로 안 되었을테니 스트레스 받지 않기로 결론 내릴 수 있었다. 다행인 건 그때라도 조금은 다시 생각할 기회를 나한테 줬다는 거고, 아쉬운 건 어른들이 묻는 질문을 싫어했으면서 스스로도 그 답변대로 나를 맡겨 놨었다는 거다. 현재는 매일 만나는 내가 가장 최선일 수 있게, 발전하기 위해 하루하루를 보내려고 한다.

     

    개인들은 각기 정체성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싶어한다. 너무나 자명한 문제에도 자신의 정체성을 건드리는 발언에는 동의하거나 행동을 바꾸거나 하지 않는다. 사회적인 교류 차원에서 눈 앞에서도 동의하는 척, 혹은 바뀔 것처럼 말할 법도 하지만 흔히 '뼈때리는 조언'에는 비교적 공격적으로 대응하는 경우가 많다. 예전의 나도 그랬을 것이다. 분명 10여년 전의 나와 현재의 나는 같은 사람이라고 보기 어렵지만, 모두 합쳐서 '나'로 분류된다.  구체적인 생각이나 행동하는 태도는 달라보일지 모르지만, 그 모습이 점점 정체성에 가까워지는 방향으로 변해온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그 모든 모습이 '나'라고 하는 것이 적절하다. 그러니 어떤 경로를 거쳐왔는가 대신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살 것인가를 다시 생각하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

     

    누군가는 마지막 부분에 가서 '정체성'을 생각하라는 조언의 등장에 놀랐다고 리뷰한 걸 봤다.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도 스스로 '다시 생각하기'를 실천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낀 사람 중 한 명인 게 아닐까. 누구보다 똑똑한 지구인 중 한 사람일 애덤 그랜트지만, 그만큼 '내가 모르는 것'과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의 경계에서 자신의 확신을 의심할 필요성을 느꼈을 것 같다. 그래서 보다 원론적으로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는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에 이 책으로 답한 것이 아닐까 싶다. 

     

    (여전히 문해력 부족인 탓이려니.. ) 완독하기까지 내용이 결코 쉽지는 않았다. 저자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 끊임 없이 방향을 되뇌여야 했다. 하지만 너무 놀라울 만큼 앞서 들었던 예시를 다시 적용해서 리마인드 & 콜백 시켜주는 저자의 서술 방식에 놀랐다. 글의 개요를 어느 정도 생각하고 서평을 쓰려고 해봤지만, 의식의 흐름에 따라 자꾸 엉뚱한 데로 튀어서 그대로 backspace를 눌러 지우고 다시 쓰는 일이 파다 했는데 '다시 생각하기'라는 사고 방식의 제안에도 놀랐지만, 더불어 매끄러운 글을 보며 글선생님도 함께 만난 느낌이었다. 원문을 그대로 읽을 수 있는 실력을 키워서 올해 안에는 원서로 다시 읽어보고 싶은 바람이 새롭게 생겼다.

     

    끄아아.. 찢어지다니.. ㅜㅜ 아래 작은 글씨로 '비매품'이 보인다 

    6

    마지막으로, 가제본 독서의 즐거움

     

    개인적으로 가제본을 처음 접해봐서 너무 신났다.

     

    아직 미완성인 책의 오타, 편집 오류들을 찾아내며 읽는 재미가 있었다.  다 고쳐졌겠지만, 정식으로 출간될 책과 괜히 비교해보고 싶기도 하다. 그리고 마무리 작업 때문이었는지, 주석이 없다. 어떤 때는 무거워서 떼어놓고 싶기도 한 주석인데, 막상 없으니 자꾸 보고 싶어지는 주석들이 많았다. 혹시 소설이라면... 결말이 없는 가제본이 만들어지는 건 아니겠지란 웃기는 상상도 해봤다.

     

    벽돌책의 기준은 몇 페이지부터일까 싶었는데, 415페이지 이상은 벽돌책인 걸로 정했다. 주석이 없었는데도  한 손으로 펴보기 어려웠고 무의식 중에 지하철에서 보다가 손목을 털었을 때 이 정도면 벽돌책임이 확실하다 싶다. 

     

    띠지도 없고, 책 날개 (?)도 없어서 계속 페이지를 표시할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리고 목차나 중간 표지들이 밋밋했고, 장마다 페이지가 없어서 다시 내용을 훑어볼 때 안 좋은 기억력에 의존해야 했다. 결정적으로, 책 표지가 너무 쉽게 찢어질 수도 있는 사실을 알았다. 책을 박제해놓을 생각은 없었지만, 책 뒷표지가 무언가 끈적거리는게 스며서 집어드려는 순간 쭈욱 찢어져버렸다. 너무 속상했지만, 덕분에 그 뒤부터 접고 밑줄 긋고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 최근 많이 읽고 싶다는 생각에 다소 과하게 책을 수집하고 있었는데, 완독 후에 책의 메세지를 되새기고 내 생각을 정리해보는 시간의 비중을 늘리려고 해야겠다. 

     

     

    페이지 표시가 없는 목차 

     

    *네이버 e북카페 이벤트를 통해 가제본을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으로, 실제 출간도서의 페이지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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