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평 [그리고, 유리코는 혼자가 되었다] 비현실적인 전설의 실현1F 책책책 2021. 3. 13. 18:24반응형
최근에는 소설은 많이 읽지 않는 편이다.
저자의 소개 중에 눈에 쏙 들어오는 부분이 있어서 읽고 싶어졌다.
이 책은 제 18회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대상과 U-NEXT.간테레상으로 선정된 작품이다.
콘테스트 이름이 재미있다고 생각했는데, 새로운 미스테리&엔터테인먼트 분야의 작가를 발굴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졌고, 17회부터 추가된 U-NEXT.간테레상은 수상 시 영상화제작을 전제로 만들어진 상이라고 한다. 아주 오래전 미스코리아들은 브랜드들의 전속 모델로 활동했었고, 아이돌 양성 프로그램에서도 상위 몇명은 부상으로 유명 계약사와 계약을 한다든가 하는 것처럼 이제는 소설도 다른 종류의 컨텐츠로의 변환을 고려하는 것이 기본이 된 것 같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이 작품이 기도 소타의 데뷔작이지만 여든 개 이상의 작품을 썼다고 한다. 습작이 많은 것 자체보다도 응모할 수준이 안된다고 생각하고, 습작이 스무 작품이 넘어서면서부터 신인상에 응모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우리는 작은 노력을 하고도 결과가 바로 나오지 않으면 초조해 하기 마련인데, 신인인데도 이미 내공이 상당해보이는 저자의 이야기에 소설&작가에 대한 관심으로 책을 읽었다.
줄거리
톱클래스 명문고, 사립 유리가하라 고등학교.
창립 90년이 되었지만,
20년전까지는 사립 명문 여고였던 곳.
이 학교의 신입생인 야사카 유리코는 '유리코님의 전설'에 대해 듣는다. 유리코라는 이름을 가진 학생이 '유리코님'이라는 절대 권력을 갖고, 그를 거역하면 반드시 불행이 따라온다는 것.
단, 이름의 한자표기도 상관없고, 학년의 제약도 없지만,
오로지 학교 내 '유리코'는 한 사람 뿐.
원하지 않지만 이미 유리코님의 후보가 되어버렸고, 경쟁은 이미 시작되었다.
3학년 쓰쓰미 유리코는 새로운 1학년의 유리코 후보들을 경계하고, 후보들이 학교에서 살해된다. 여지껏 작고 큰 트러블이 겪은 뒤 전학을 가는 정도였던 '유리코의 전설'의 불행은 살인까지 이르게 되자 점차 모두 겁에 질려간다.
사실 야사카 유리코는 반에서 집단 따돌림과 괴롭힘들 당하고 있었던 지라, 중학교부터 친했던 시마쿠라 미즈키에게 계속 의존하게 된다. 그런 건 미신일 뿐이니 걱정하지 말라던 미즈키는 범인을 밝혀내겠다고 하는데...
감상
비현실적 전설이 존재하는 나이
오랜 만에 고등학교 적을 회상해볼 수 있었다. 유리코처럼 집단 따돌림이나 위험한 사건을 겪은 적도 없었고, 평이하게 보낸 축에 들것이다. 그런데도 시간이 꽤 오래 지나고 나니 좋은 추억인 것이지, 학교를 중심으로 흘러가는 하루하루 속에는 늘 위태로운 면이 있었던 것 같다.
아직 신체적, 정신적으로 모두 성장하는 시기의 청소년들은 그 자체로 아름답지만, 불안함을 더 감추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무언가에 더 맹목적이거나 비정한 태도를 취하기 쉬워진다. 스스로는 매우 어른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책임을 성인들과 다른 취약점을 지니고 있다. 아주 단순하게 말하면 생각과 행동 사이에 일종의 필터가 부족하다 해야 할까. 고등학생들이라 더 면밀하게 어른들을 따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야기 속의 주요 인물들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아직 자라는 중이거나 성인임에도 마음을 다친 고등학생에 머물러 있는 듯 했다.
'유리코님'이라는 한 여학생이 독보적으로 우수한 것도 아니고, 엄청나게 싸움을 잘하는 것도 아닌데 단지 이미 십년도 더 전에 지어진 이름만으로 특별한 대우를 받고 권력을 가진다는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전설들이 살아서 여러 해 계속 구전될 수 있는 이유도 그런 나이이기 때문이다.
미나토 가나에의 <고백 >*떠오르는 부분이 있었다. 학교에서 일어났다는 것을 제외하면 많이 다른 내용이지만, 읽으면서 느껴지는 학생들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서늘함'이 비슷했다. <고백>에서는 초등학생이 등장하는 것부터 충격적인 플롯이었고, <그리고, 유리코는 혼자가 되었다>는 범행이 진행될 수록 학교 분위기는 점차 무거워지는데도 불구하고, 범인이나 밝혀내려는 쪽이나 각자의 의도대로 계속 사건을 심화시키는 것이 어떤 점에서는 감정이 없는 것 같이 느껴졌다. 비정함이 흐르기는 했지만 소설 전반의 '서늘한 감정선'이 매력적이었던 작품이다. 또한, 일본에만 있는 특유의 정서가 시작부터 결말까지 일관되게 이어져서 마치 일본판 '여고괴담' 같다는 느낌도 받았다.
유리코에게, 원래 사람은 혼자야
유리코는 너무 의존적이라 미즈키가 없었으면 어쩌나 싶다. 미즈키와 같은 의지가 되는 친구의 존재는 꼭 필요한 걸까? 학교를 다닐 때는 무리지어 다니는 아이들이 생기고, 그 그룹에 속해야지 안정이 되는 듯 내가 포함될 곳을 찾아다니게 된다. 하지만 이제 와서 보면, 어떤 때는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면서도 집단에 포함되려고 노력한 순간들도 있었다. 꼭 그러지 않아도 충분했는데, 그 때 그런 대답을 주는 사람이 없었던 것 같다.
자세히 쓸 수는 없지만, 제목대로 이루어진다.
소설 마지막에 유리코는 미즈키와 크레이프를 먹으러 갈 생각에 들떠있다. 과연, 유리코가 그날 진짜 크레이프를 먹었을지 궁금하다. 혼자인 유리코는 어떻게 유리가하라 고등학교를 마저 다니게될까. 유리코는 매우 소심하고 수동적인 인물처럼 보인다. 하지만 오로지 미즈키를 따라가기 위해서 명문고인 곳의 시험도 준비하고 결국 같은 고등학교에 올 수 있었던 걸 보면, 진짜 하고 싶은 일이 생겼을 때 주변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잘 살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연약한 고등학교 시절은 결국 공부보다도 스스로에게 작은 가능성을 찾아주기 위해 존재하는 시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나 혼자서도 설 수 있다는 작은 경험을 해볼 시기 말이다. 응원해, 유리코! 잘 해나가 봐, 원래 사람은 혼자니까.
마무리하며...
가장 좋아하는 책을 고르라면 여전히 '제인에어'가 포함되지만, 전보다 책을 많이 읽는 요즘은 오히려 픽션을 많이 읽지는 않는 편이다. 소설은 점차 전개가 되다보면 분위기를 타고 휘리릭 읽게 되기 때문에 잘 읽히기도 하지만, 너무 몰입해서 나중에 보면 세부 내용을 놓치기도 하고 다른 일을 해야하는데 읽고 있게도 되는 단점이 있다. 또, 책을 조금 밖에 안 읽을 적에는 픽션 읽는 즐거움이 컸는데, 도리어 읽고 생각을 정리해서 서평을 쓰려고 보니 누군가의 예술작품을 품평하게 되는 느낌이라 조금 더 어려운 것 같다. 어느 책이나 저자의 피땀이 어린 결실이지만,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작가에 대한 경외감이 커진 탓 같기도 하다.
아, 추가하자면 본래 블로그에 서평을 공유하는 것 셀프 피드백을 위한 것이었는데, 소설은 역시 스포일러하지 않는 서평을 쓰기 너무 어려운 장르다.
이 작품은 이미 2020년에 일본에서 드라마로 방영되었고, 웨이브(WAVVE) OTT에서도 3월에 공개된다고 하던데 나중에 원문과 비교해보는 재미도 있을 것 같다. 다마시로 티나(시마쿠라 미즈키 역), 오키모토 나쓰미 (아사카 유리코 역) 주연으로 예고편만 찾아봤는데, 책 전반에 흐르는 분위기를 잘 살린 것 같다. 확실히 영상으로 만들어지면 공간이 함께 보이니 느낌이 다른 것 같다.
독자의 소소한 바람으로, 이후에도 기도 소타의 작품이 많이 나와서 꾸준히 차기작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물론 한국에 번역될지는 또 다른 문제지만... 데뷔 이전에만 80편 넘게 썼다면 앞으로의 활약도 기대해봄직 하지 않을까?
YES24 구매링크
*이벤트로 책을 제공받아 솔직하게 쓴 서평입니다.*
'1F 책책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평 [싱크 어게인, 애덤 그랜트 저] 다시 생각할 시간 (0) 2021.03.31 서평 [유머의 마법, 제니퍼 에이커, 나오미 백도나스 저] 재미와 위트를 잃지 말 것 (0) 2021.03.23 서평 [실험의 힘, 마이클 루카, 맥스 베이저만 저] 실험할 것이 천지삐까리 (0) 2021.03.11 서평 <미야자키 월드, 수전 네이피어 저> 성덕의 클래스 (0) 2021.02.22 서평 <결혼학개론, 벨린다 루스콤 저>, 오래 같이 놀자 (0) 2021.0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