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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우리의 뇌는 어떻게 배우는가, 스타니슬라스 드앤 저] 영어는 어순이 달라서 더 어려웠을까1F 책책책 2021. 7. 1. 03:35반응형
쪼글쪼글 주름지고 에너지를 엄청 많이 쓰는 뇌에 대해 몇 권을 접해봤지만, 여전히 미스테리한 부분이 많은 것 같다. 얼마나 뇌에 대해 할 이야기가 많은지 뇌의 기능 중에서도 '학습' 카테고리만 설명하는데 <우리의 뇌는 어떻게 배우는가> 한 권이 온전히 쓰여있다. 깨알 같이 밑줄 치고 앞뒤를 오가면서 읽은 만큼 실천으로 옮겨볼 부분이 많은 책이었다.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친구는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
언어학습에 있어서 어순이 다른 두 언어를 동시에 배우는 것에 대해서 여전히 난 의문이 들어
두 언어라 해도 영어와 프랑스어를 같이 배우는 것과 영어와 한국어를 같이 배우는 건 매우 다른 일 같은데
기억을 더듬어 봤다.
영어의 문법을 배울 때 어순이 다르다보니, 두 단어 만에 이미 '나는 간다', '너는 먹는다' 처럼 이미 주체가 무얼 했는지 알 수 있었을 때 엄청 직접적이네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반면, 한국어는 너무 양반스럽게 엄청 많은 말을 하고 나서야 대상에 대한 무슨 행동을 했는지 알 수 있다. 누군가 절묘한 순간에 대화를 끊었다면, 눈 앞의 커피가 사왔다는 건지 직접 내렸다는 건지 몰라서 다 마신 뒤에야 알게 될 수도 있다. 일본어는 한자까지 들어가지 않으면 일상 대화는 어순이 비슷하니 처음 배우기가 상대적으로 쉽다고 느꼈지만, 차라리 독일어/프랑스어 등이 영어와 유사한 체계인 것은 뭉뚱그려 받아들이기나 쉽지 바로 옆 나라여도 중국어는 간체자도 어려운데 어순이 이해가 안 가서 절대 작문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친구와 이야기하면서 '엄청나게 합리적인 의심'이라고 생각하면서 책에서 이 질문의 답을 찾아다녔다.
태어나자마자 아이의 뇌는 전 세계 모든 언어의 모음과 자음을 거의 다 구분하고, 그 음을 카테고리화 한다. 생후 1년간 자신의 모국어에서 사용되지 않는 음소를 구분하여서 환경 안에 존재하는 음소만을 그대로 유지한다. 따라서 부모가 두 개의 언어에 반반 노출 시킨다면 이미 1년차에 발음을 정확하게 구분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태어나면서부터 통계학자와 같은 아기들은 발음에서 어떤 음 다음에 다른 음이 나오는 것이 자연스러운지, 자음과 모음의 조합을 알아챈다. 관사 (a, an, the)와 대명사 (I, you, he, she, it)과 같은 문법어의 기능적인 어순 등의 정보도 끊임 없이 노출되는 대화 속에서의 통계적 분석을 통해서 현존하는 어떤 인공지능 알고리즘보다도 언어에 대한 많은 정보를 습득하게 된다. 저자는 첫번째 생일을 맞이할 때 아이들이 기본적인 음 (음소)부터 멜로디 (운율), 단어 (어휘) 그리고 문법규칙 (구문론)면에서 모국어의 주요 규칙들에 대한 토대를 쌓게 된다고 설명한다. (122-126쪽)
이런 아이들의 놀라운 능력은 유전적 배경과 무관하다고 한다. 이런 선천적인 능력에도 불구하고 영국의 철학자 존 로크, 프랑스 사상가 장-자크 루소, (애플 로고의 주인공으로 오해받아 더 유명해졌던) 앨런 튜링까지도 '빈 서판' 주장을 지지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아기들이 언어에 충분히 잠기기만 한다면 세 가지 언어까지도 그 음운 체계에 귀가 트일 수 있다고 한다. 생후 1년이 지나는 지점에서부터 언어에 대한 민감도가 조금씩 감소하기 시작한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아기들은 음운 체계는 1년 안에 마스터하며 그 이후로는 습득력이 낮아지며 문법 학습 능력처럼 보다 높은 수준의 언어처리 능력은 더 오래 유지되지만 사춘기 즈음으로 끝나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디테일한 학습 방법과 무관하게 외국어는 청소년기까지 공부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따라서, 어른은 이미 언어에 대한 '민감기'로부터 멀어졌기 외국어를 아이들처럼 배우는 방식으로 접근하기에는 매우 큰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가상화폐', '메타버스', 'AI', '공유경제' 같은 신조어들을 이해하고 문장 안에서 활용하는 것은 성인들에게 더 유리해보인다. 이는 뇌 조직이 모듈 방식으로 서로 독립적으로 되어 있어 '새로운 단어'를 습득하고 의미를 배우는 능력은 민감기를 타지 않고 평생동안 일정 수준의 '뇌가소성'을 유지한다. 저자에 따르면 아직까지 어휘 회로는 민감기가 적용되지 않는지 생물학적 이유에 대해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고 하는데, 성인이 유아나 청소년보다 언어 습득에서 압도적으로 앞설 수 있는 영역은 어휘인 것이란 사시을 알게 된다.
(178-184쪽)
어순과 같은 문법체계가 다른 외국어 학습은 더 어려울 것이라는 가설부터가 이미 민감도가 높은 시기가 지난 성인의 관점에서 보니 더 궁금한 질문이었던 것이다. 아이들 또한 새로운 것이 낯설지만 그들에게는 외국어가 아니더라도 새로운 것들을 빠르게 습득하는 능력을 잘 활용한다.
요즘처럼 영어 유치원을 다니는 세대는 아니였지만, 중학교부터는 정규 과정에 영어가 포함되었던 것 같고 나름 회화로도 접할 기회가 있었던 것 같다. 평균적으로 영어를 잘하는 지구인이지만 또한 만족을 모르는 한국인들 중 한 명이라, 영어가 어렵다고 정해놓은 선입견에 갇혀 있어서 더 어려웠던 것 같다. 처음 영어를 배운 시기를 고려하면 민감기의 막차 정도는 탔던 것 같은데, 영어를 어려워 하게 된 건 '소극적'인 자세로 공부한 시간이 더 길었기 때문이라고 자가 진단 해본다.
(참고)
2부 '우리의 뇌가 배우는 법'
(122-126쪽) '아기들의 보이지 않는 지식' - 언어본능
(178-184쪽) '교육의 몫' - 민감기란 무엇인가?
태깅하는 재미가 쏠쏠했던 책 올해 영어 공부란 걸 다시 시작해보니 생각보다 얼마나 단어를 조금 밖에 몰랐는지 확 와닿았다. 앞으로는 많이 바뀔 수도 있겠지만, 여전히 전 세계에서 정규과정 상 학교를 10년씩은 다니는 게 보통이다. 실제 뇌가 어떻게 배우는지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고 무작정 주입식으로 공부하느라 내 뇌가 얼마나 힘들었까라는 마음이 들었다. 대충 알고 있는 단어가 왜 이렇게 많았는지... 영어만 배운 햇수가 있는데, 1만 단어는 알지 않겠지 어림짐작했던 게 신기루같은 이야기였다는 걸 깨달았다. 책을 읽고 나서 단어 암기에 집중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안이라는 걸 알았으니 꾸준히 공부해야겠다.
영어 교육은 나의 문제이기도 했지만, 엄마로서 교육열이 높은 한국에서 학부모가 되기 전에 교육 방침을 정할 필요가 있었다. 과한 사교육 시장에 노출되는 게 아닐까 싶어서 영어 수업이라면 무조건 절레절레 했었다. 그런데 책을 읽고나서 조용히 생각을 바꿨다. 물론, 읽기 능력이 천천히 발달 중인 아이니 알파벳이나 글자로 외우는 걸 주요한 내용으로 하는 수업은 피할 거다. 대신에 아이가 처음 태어나서 말을 배울 때처럼 좋아하는 컨텐츠를 영어를 섞어서 보여주고, 짧은 영어 책도 전에는 한글로 해석해서 읽어줬다면 이제는 부족한 발음이나마 원문 그대로 읽어주기 시작했다. 두 언어에 익숙해진 아이의 뇌는 두 언어의 처리부터 제3, 제4의 언어의 습득에도 유리하고, 나이가 들어서 알츠하이머 병에도 더 오래 저항할 수 있다니 노력을 더 해봐야겠다. 엄마는 단어를 외우마~ 너는 옥토넛을 영어로 보고, '작은 별'을 영어로 부르렴 ~~
덧붙여, 아웃풋 독서를 도와준 친구에게 무한한 감사를 표한다. 직접 사진으로 공유한 '풍요로운 환경'에 대한 내용이 태어날 아이의 양육에 새털같은 보탬이 되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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