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서평 [유전자 임팩트, 케빈 데이비스 저] 거인의 신발끈에 매달려 보자
    1F 책책책 2021. 6. 15. 00:04
    반응형





    네이처 편집자를 거쳐, 크리스퍼 저널의 편집장을 거친 저자 케빈 데이비스가 읊어주는 크리스퍼 이전, 이후의 역사 심지어 최근 2019년 결과까지 통틀어 풀어주는 책이 바로 <유전자 임팩트>다. (원제: Editing Humanity)

    크리스퍼_CRISPR는??


    크리스퍼는 약어로, 본래의 뜻은 '주기적으로 간격을 띠고 분포하는 짧은 반복 서열'이다. 크리스퍼 유전자는 유전물질을 자르는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세균 내에서 외부의 바이러스가 침입했을 때 대응하기 위하여 그 유전정보인 DNA 일부를 잘라 보관하는 세균의 면역 체계의 일종이다. 나름 불청객들의 '블랙 리스트'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너무 놀라운 작은 뇌세포 이야기>에서 뇌가 면역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이어, 세균들도 자신들을 보호하는 방법을 가지고 있고 그 기능을 역으로 활용하여 '유전자 편집 가위'를 만든 것이다.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검색하면 관련된 글이 무수히 나온다.
    과학자가 본 노벨상 (김진수 유전체 교정 연구단 수석연구위원)
    https://www.ibs.re.kr/cop/bbs/BBSMSTR_000000000991/selectBoardArticle.do?nttId=19163

    각오가 필요한 책


    이 책을 읽기 위해선 단단히 각오를 다져야 했다.

    만약 크리스퍼를 이용한 연구를 하게 된다고 한들, (지금 시점이라면 '프라임편집'을 받을 지도, 관련 22장) 이런 두께의 리뷰 페이퍼를 다 읽고 시작할 수 있었을까?
    크리스퍼 이전에 게놈 지도 프로젝트부터 거슬러올라가야 하는 이 이야기는 어느 시점에 끝난 것도 아니고 너무나 활발히 진행되는 분야임에서 저자가 스스로 전문성을 가감없이 보여주는 책이었던 것 같다. 책에서도 실제로 연구에 집중하다가 번뜩 섬광 같이 다가오는 영감들을 얻는 연구자들의 모습에서 어떤 노력이 모여 번뜩임으로 왔을까 생각하며 읽었다.

    크리스퍼로 혁신적인 성과를 낼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 지넥이 아이작 뉴턴의 말을 인용한 것이 인상 깊었다. 뉴턴이 과학계 동료들 그리고 선대 과학자들이 남긴 공헌을 인정해야 한다는 의미로 했다는 '거인의 어깨에 서 있다. ' 라는 말이 대단한 실력이 없음만 탓한 시간이 더 길었던 나에게 조용한 일침을 날렸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동료 간에도 해주는 조언들은 공통적이었다. 세미나를 듣고나면 사람 생각하는 게 비슷비슷하다는 이야기를 들어보기도 했다. 관련 분야의 배경 지식을 전부 살펴보고 빈 틈에서 아이디어를 찾아보라고도 했다. 하지만 그 배경을 샅샅이 이해하는 것부터 엄두가 안났던 소위 쪼렙에게 그 조언은 더 무기력하게 흩어졌다. 범인의 수준에서 거인의 어깨에 서는 것 조차도 무리였던 건 사실이지만, 마냥 못한다고 포기했던 것 같다.

    지금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이렇게 흉기 수준의 벽돌책을 집어들면 펼쳐든 것은 종이요~ 떠다니는 것은 지렁이다 싶은 기분이 든다. 처음 듣는 외국어나 다름 없다는 생각을 첫 눈에 한다. 그래서 읽기를 포기할 것인가. 예전에 수많이 포기한 횟수만큼 독서만큼은 무슨 소리인지 몰라도 최대한 도전해보자라는 마음이 든다. 거인의 어깨에 오르려면 신발끈이라도 잡고 매달려봐야지 않겠는가. 책을 읽어서 손해볼 것은 도무지 없다. 서평까지 쓰면 종이 한 장 두께만큼은 성장할 수 밖에 없다.

    단답식이 안되는 문제를 고민하기 위한 책


    이 책은 유독 질문을 많이 던져준다. 유전자를 편집하는 크리스퍼를 다룬 책을 펼 때 이미 첫 질문은 정해져 있었다.

    '인간은 스스로의 형질을 바꾸거나 사라진 동물들을 되살려도 되는가? 마치 창조주처럼 굴어도 되는 걸까? '

    어떤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우리는 알약이나 시럽 상태의 약도 먹고, 주사도 맞는다. 생명의 신비는 여전히 미지의 영역인지라, 자연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온다. 체내에 있는 항체나 호르몬을 유사하게 따라하면서 치료에 활용하려고 한다. 책에서 과거에는 '시험관 아기'도 크리스퍼의 생식 세포 편집 만큼이나 윤리적으로 이슈가 되었지만 지금은 그 기술을 이용해 가족을 이루게 된 이들을 비춘다.

    분명 인간은 진화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단순 치료 수준을 넘어서서 유전자를 편집하는 것은 현재가 아닌 '미래'를 편집하는 행위라는 것에서 고려해야 할 점이 무수하다. 멸종된 동물을 되살리는 프로젝트들도 언급이 되는데, 영화 <쥬라기 공원>이 생각났다. (물론 공룡을 되살리려는 것은 아닐 거다) 인류가 전 세계의 생명다양성을 해쳐왔으니 되돌려놓아야 할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특정 종의 멸종은 그 특성이 생존에 부적합 하기에 일어난 일이라면 되돌릴 수 없는 부분 아닐까? 늘 지금의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는 이미 일어난 일들을 모두 고쳐놓겠다는 게 꼭 옳은 일인지 모르겠다.


    'GMO 식품은 나쁜가? 좋고 나쁨의 기준을 세울 수 있을까?'

    유전자 편집 기술이 발달하면 사람에게 적용되기 이전에 식품에 많이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GMO 콩, 옥수수에 대한 무조건적인 불신이 있었다. 직접 먹어도 몸에 해가 될 것 같고, 그런 GMO 곡물을 가축의 사료로 주는 것이 또 육류 섭취 기준을 한없이 까다롭게 만들 수 있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단순히 GMO라고 설명해서는 안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기존에도 돌연변이들을 이용해서 종자 개발은 이루어졌다. 인류가 거대해졌기 때문에 그만큼 많은 식량을 확보하기 좋게 하기 위해 분명 더 튼튼하고 잘 자라는 종자들을 골라서 더 많이 키웠을 것이다. 밀도 그런 과정에서 거쳐서 지금 주로 많이 키우는 종자들은 과거 인류가 처음 먹기 시작했던 밀보다 수확량도 높아졌다고 한다. 한편, 개량된 밀에 포함된 글루텐 비율이 높아졌기에 현대인은 건강한 식이라면 밀가루를 제한하게 되는 것이다. 요즘 식품에는 '영양 정보'를 일일이 기재하듯이 어떤 형질을 개량한 것인지 GMO를 구체적으로 분류하고 그런 사실을 소비자에게도 인식 시켜야 하는 것 아닐까 싶었다.




    '윤리적인 현기증에 걸리지 말자'

    <정의란 무엇인가>로 국내에 많이 알려진 하버드대학교의 마이클 샌들 교수가 "과학의 속도가 윤리적인 이해 수준을 넘어서면, 사람들은 각자가 느끼는 불편함을 표현하느라 애를 먹게 된다. " 라고 했다. (p. 620) 분명 윤리적 기준에 대한 사회 및 공동체의 합의가 이루어 지기 이전에 기술의 발전이 빠른 시대를 살고 있다. 코로나-19 이후로 그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 코로나 이전, 이후의 '하루'가 가지는 무게 차이만큼 점차 크리스퍼 이전과 이후의 기준에 대한 논의는 계속 되어야 할 것이다.

    사회 구성원들 각자가 적절한 기준을 갖지 못한다면 JK 같이 본인의 명예를 위해 해시태그 #크리스퍼아기 를 만드는 사람에게 동조하는 오류를 범할 수도 있다. 그가 자신의 독보적인 기술이나 과학적 발견을 인정 받고 싶었다고 이야기해주고 싶지만, 크리스퍼 아기를 만든 과정이 밝혀진 바 의도대로 편집이 되지 않았을 뿐 더러 그 쌍둥이의 안전이 확보되었는가 하는 문제는 현재 진행형이다. 여러 과학자의 빛나는 연구에도 불구하고, 크리스퍼-카스9 시스템은 '크리스퍼 아기'라는 무지막지한 키워드에 가려진 느낌이 있다. 그나마도 크리스퍼를 더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게 되었다면 그 사건의 그나마 가장 좋은 측면일 것이다. JK는 책 안에도 몇번이나 언급되는 엘리자베스 홈즈와 유사한 유형의 인물일 거라고 느껴졌다. 테라노스는 헐액 몇 방울로 수많은 병을 진단할 수 있으며, 가정에서도 사용 가능한 진단 키트를 홍보했고 많은 사람의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저널리스트 존 캐리루가 쓴 <배드 블러드>를 읽으면 어떻게 테라노스가 굴러갈 수 있었는지 조차 의문이 들었다. 엘리자베스 홈즈는 영리한 사람인지 아닌지 판단이 되지 않을 정도로 실질적인 결과를 만들어 내지 못했고, 그녀가 가장 잘한 일은 스티브 잡스의 검은 터틀넥 코디를 잘 따라한 것으로 관련 부분을 읽으면서 계속 떠오르는 인물이었다. JK의 실험 결과 중 여러 측면이 잘못 되었지만, 그 무엇보다도 의도대로 성공도 하지 못한 기술로 생명을 잉태하게 했다는 점이 가장 과학자로서 비난 받아 마땅하다 생각한다.

    JK는 아주 핫한 반응을 기대했겠지만, 다행히도 상식이 있는 지구인들은 함부로 생명을 다룬 그를 비난하는 의견에 함께 했다. 그나마 '크리스퍼 아기'는 에드 영처럼 일목요연한 15가지로 정리하지는 못해도 많은 사람들이 문제가 있다고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무 자르듯이 이건 옳고 저건 옳은 사회 문제는 많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면, '기후 위기'를 극복하는 방안을 고민하는 것도 지구를 위한 것 같지만 사실 인류가 더 안전하게 살아남기 위한 고민이며, '자율주행 차량' 에 대한 우려들도 기계적 결함이 문제라기 보다는 결국 사람들이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의 문제가 될 부분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 뇌는 혼란 속에 있기보다 계속 빠른 결론을 내리고 싶어할 테고, 각자의 기준을 만들기 위한 고민을 먼저 해두지 않으면 판단을 해야 할 때 아주 멍청한 선택지를 고를 지도 모른다. 크리스퍼를 활용해 유전자를 편집할 수 있게 되었듯이 지금은 예상할 수 없는 새로운 상황이 다가왔을 때 기술을 정말 모두를 위해 쓰려면 윤리적인 현기증을 함께 이겨내려는 공동체적인 노력이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것 또한, 나에게 적용될 이야기


    크리스퍼는 너무 어려운 소재였다. 어떤 부분은 저자가 쉽게 설명하려고 간략하게 이야기 하는 걸 느껴졌지만 이해가 안 갈 때 엄청 갑갑했다.
    책을 모두에게 권할만 하지는 않다. 정말 출판사에서 리뷰 논문 이후에 책으로 저출하는 수준의 내용이니 말이다. 그런데도 누구에게나 '크리스퍼'가 뭔지는 읽어보라고 하고 싶다. 책 읽을 때 모임에서 서로 공유했던 좋은 유투브 영상들 정도는 하나쯤 보았으면 좋겠다.

    유전자를 편집하는 이야기는 누구에게나 관심사는 아닐 수 있다. 혹시, 유전적 질환의 이력이 있다면 바로 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조금 상상력을 보태자면 호호백발이 되어서 크리스퍼에서 발전된 기술로 치료를 받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누구나 큰 이득을 노릴 수 있는 일과 윤리적으로 옳은 일이 상충되는 순간에 서게 되면 떠오를지도 모른다. 유전자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서 적용하지 못할 것은 없다. 본래도 책이 유용한 이유는 직접 겪을 수 없는 일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해주기 때문이 아닌가. 거인이 움직일 때 신발끈에라도 매달려 보면 저 산너머까지 볼 수는 없지만 어느 방향이 맞는지는 알 수 있을 거다.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