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전에 읽은 <겸손의 힘>이 아무래도 추상적인 측면이 있었다면, <강인함의 힘>은 훨씬 직접적이고 구체적이어서 바로 행동에 옮겨볼 수 있는 일이 많이 떠오르는 책이었다. 특히, 목차만 보아도 4개의 원칙과 좋은 세부항목(예를 들어, 4장 자신감은 조용하고, 불안감; 5장 버틸 때가 있고 접을 때가 있다; 9장 감정의 주인으로 사는 법 등)을 읽는 것만으로 도움이 될 뿐 아니라, 개인마다 필요한 내용부터 찾아보기 수월한 구성이다. 두 권다 너무 즐겁게 읽었지만 만약 둘 중 한 권만 추천할 수 있다면, 받을 사람이 특별히 다독가가 아닌 이상 <강인함의 힘>을 추천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부분에서 '달리기'와 연결 지어 설명을 하는 점이 좋았다. 우선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서 실제 사례를 듣는 다는 점이 좋았다. 아무리 좋은 실사례라 해도 지식만이 아닌 감정이 연관된 이야기는 인용을 하는 것보다 당사자의 글을 통해 들으면 더 잘 받아들이게 된다. 또, 일부 독자만 공감할 수 있을 법한 특정 분야의 이야기라면 신선하고 놀라울 수는 있어도 공감도가 떨어져 본래 전하려던 내용이 잘 전달될까 하는 우려도 있다. 그런 면에서 달리기는 안 해 본 사람도 극히 적은 활동이라, 선수 출신이기도 한 스티브 매그니스가 다루는 강인함이란 주제가 찰떡궁합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달리기가 다른 외부의 개입이 적고 어찌 보면 외로운 측면도 있는 운동이기도 하다. 마라톤 등의 달리기 종목 선수에게는 체력적인 면만큼, 심리적인 측면도 많이 작용한다는 생각이 들어 '강인함'을 설명하기에 적합한 운동으로 보인다.
잘못 알았던 강인함
맞추려 한 것도 아닌데, 어쩜 '겸손'과 마찬가지로 '강인함'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었던 바가 컸다. 약간 차이가 있다면, '겸손'은 그 개념부터 쉽지 않았다면, '강인함'은 일부 알기도 했지만 잘못 맞춘 조각이 어떻게 문제인지 몰랐는데 해소가 되는 기분이었다.
부제에 '회복탄력성을 능가하는 강인함의 비밀'이라 했던 것처럼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외적보다 내면의 강인함을 가리킨다는 것은 예상했다. 그리고 내면의 강인함이야말로 진정한 강인함이라는 것에 절반 정도는 동의했었다. 그런데 책을 읽다가 악으로 깡으로 버티면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강인함을 갖춘 사람들의 모습인줄 알았는데... 아니구나... 어디서 이런 큰 착각에 빠지게 된 걸까. 이제는 벗어나야 할 전근대적인 강인함에 익숙해져 있었다니... 착각에 빠지게 된 이유를 찾는 것이 이번 <강인함의 힘>와 대화하는 한 축이 되었다.
짧지만 충격적이었던 문구 중 하나가 '아이들에게 자신을 믿으면 다 할 수 있다고 하지만, 자신을 믿는 방법은 아무도 가르치지 않는다. '는 내용이었다. 소름 돋지만 현재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도 비슷하다. 더불어, 자신감은 안경과 같다는 표현도 인상적이었다. 대체로 과제가 어려워도 '할 수 있겠다'는 마음만 들면, 끝까지 완수하는데 문제가 없었던 것 같다. 마치, '자기 효능감' 단어 하나를 알게 된 이후로 아이를 돌보는 것이 훨씬 마음이 가벼운 일이 되었던 것처럼 자신감이 자존감보다 핵심적인 키인 기분이다.
자신감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는데 책을 읽으면서 그나마 다행인가 싶었던 면은 자신감도 부족했지만 마음만 먹으면 다 할 수 있다고 여기는 가짜 자신감도 부족했다는 점이었다. 주로 계획 오류에 빠지는 이유가 가짜 자신감 탓이긴 하지만, 희망 회로를 바짝 돌려서 세운 목표는 실행결과를 보기도 전에 다 티가 나곤 했다. 뇌를 속이는데 실패했다고나 할까. 역시, 이럴 때 PDS(Plan-Do-See)가 중요하다는 걸 느끼게 된다.
이 책 기준의 '강인함'을 갖춘 이들이 주변에 있을까 생각해보았지만, 직접 관찰할 수 있을 만큼 가까이는 없었던 것 같다. 거꾸로 악으로 깡으로 해낸다고 보였던 사람들 중 계속 근황을 알고 있는 몇 명을 떠올려보았다. 그들은 지금도 자신의 좋은 퍼포먼스를 내고 있고 평가도 그렇게 받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처음 부러워했던 시점과 '자신감이란 안경'이 달라져서 인지, 그들의 회복 탄력성은 퍼포먼스만큼 좋은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나만의 생각일 수도 있어 조심스럽긴 하지만, 디-스트레스가 상당히 높아 보인다. 만약 그렇다면 아무리 좋은 퍼포먼스라도 오랜 시간 유지하기 힘들 것이다.
반면에, 마감일까지 서평을 쓰고 있기는 하지만, 예전 같으면 따갑다 못해 시야가 뿌옇게 되던 눈과 쿡쿡 쑤시던 예민하던 장은 이런 긴급상황에도 비교적 얌전하다. 예전에 불치병인 줄 알았던 안구건조증이나 과민성 대장 증후군이 사라지게 된 요즘은 똑같이 할 일을 열심히 적어내려 가지만 유-스트레스 구간에 머무는 시간이 훨씬 길어진 것 같다. (아쉽게도 알러지 비염은 난치가 맞는 것 같다. 체력과 면역의 강인함도 언젠가는 갖춰야겠지.) 감정의 주인보다는 감정의 노예를 벗어난 것 같지만, 감정의 주인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마음이 평안하고 고요할 수 있을지 또 어려운 일에도 강한 회복탄력성을 보일지 기대가 된다.
나와의 실험 가이드
올해 개인적인 키워드는 단연 '집중&몰입'이다.
누구나 데드 라인이 있으면 마감 효과가 발동해서 더 빠르게 수행하게 된다. 그렇지만 속도는 다소 빨라질지 몰라도 불안감이 상승하는 폭이 더 큰 유형이라 그런지, 몰아치기 한 결과물은 정말 참가의 의의를 두는 수준에만 그쳐야 했다. 과거에는 마감에 임박해서 시작했어도 멋진 결과물을 내는 친구를 보면서 몰아치기조차 안 되는 인간이라고 의지 박약인가 하고 자기 비하에 빠지고는 했었다. 덕분에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는 해 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미리 시작해야 한다는 것도 배우게 되었지만, 뒷심이 약하다는 생각을 완전히 떨칠 수가 없었다. 혼자 하는 일에는 이래저래 상관없었지만, 여럿이 하게 되는 일들은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는데 먼저 맥이 탁 풀려버리는 것이 괴로웠다.
집중력이 약하다는 생각이 있으니, 집중할 수 있는 시간 단위로 여러 가지를 조금씩 돌아가며 계획을 세우던 것이 익숙해졌다. 나름 어느 수준까지는 만족스러운 면이 있었다. 어떤 일은 더 오래 집중이 가능한지, 또 어떤 일은 정한 시간에 시작조차 잘 안되는지 확인할 수 있었고 시간을 쪼개서 쓰니 괜히 더 뿌듯한 느낌도 있었다. PDS로 꼼꼼히 데일리레포트를 쓰면서도 자꾸 떠오르는 질문이 있었다.
"만약 하루가 온전히 내 시간이 된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시간을 쪼개가면서 할 수 있을까??"
그 질문이 계속 맴돌았는데, 작년 8월에 정말 하루가 온전히 내 관리 하에 놓이게 되었을 때 '나와의 실험'이 시작되었다. (육아가 하루 1/3이상 비중을 차지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 온전히 내 것인가 싶긴 하지만, 엄마라는 역할도 중요한 우선순위 중 하나라 맘먹기 따라 온전히 내 것이 맞는 것 같다.) 실험의 성과는 계속 엎치락 뒤치락 하고는 있지만, 우왕좌왕 하지는 않았다. 이전에는 계획대로 몰아붙이기만 가능했다면 지금은 한발 떨어져서 피드백하기, 불가능한 계획은 철회하기, 과감히 포기하기 등 과거에는 전혀 해볼 수 없었던 기술들을 가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기억이 안 날 때는 이 책을 펴보면 되겠다 싶게 좋은 문구들이 압축되어 있어서 한동안 이 실험의 좋은 가이드 역할을 해줄 것 같다.
이전 <겸손의 힘> 서평을 쓰면서, 스스로의 노력이 눈에 보이게 만들려고 기록하고 인증하는데 꽤 집착했는지를 이어 읽은 <강인함의 힘>에서 어느 정도 이유를 알게 되었다고 썼었다.
즉흥적이고, 불안이 높은 성격인 내인적 요인과 가족, 회사 등의 통제 하에 둘 수 없는 외인적 요인들이 합쳐지면서 쉽게 자기 통제감이 떨어지고는 했다. 그래서 자기 계발하기 위한 독서와 공부를 하기 시작하면서 계속 그 사실을 눈으로 확인함으로써 자기 통제감을 올리고 싶었던 것이 힘들 때마다 더 강박적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아주 요약하면 크나큰 인정욕구를 스스로 달래어 주려니 결과물을 계속 찾아내려고 했던 것 같다. 세계적인 스포츠 선수들에게도 성가셔 보이는 루틴에 의지하는 것은 결국 통제감 때문이라는 문구를 읽고, 그런 루틴이 단순 징크스같은 미신적인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에나 나답기 위해 통제감을 유지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고나니 스스로를 몰아세운 순간들을 위로할 수 있게 되었다. 확실히 전근대적인 강인함에 대한 주입식 교육 때문인지 불안은 생기면 안되는 것으로 치부하기 일쑤였는데, 이제는 그런 불안을 돌보는 방법을 익혀가는 것 같다. 요즘 의식적으로 개선하려고 하는 면은 '루틴'이 되어야 할 것과 '몰입'해야 할 것의 구분을 만들어가는 부분인데, 성과가 난다면 자기 통제감이 높아질 것 같아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