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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결혼학개론, 벨린다 루스콤 저>, 오래 같이 놀자1F 책책책 2021. 2. 8. 05:30반응형
누구에게 필요한 책인가.
퇴근길의 일탈로 아이스크림 콘 하나 먹고 얼른 가겠다며 근처 패스트푸드점에 들렸다. 한 손으로는 손가락으로 읽던 페이지를 표시한 채 다른 손으로 QR코드 체크인을 한 뒤 매장에 들어가려는 순간,
직원 분이 웃음을 터트리셨다. "어머, 결혼학개론?" (아마도 파트타임으로 일하시는 듯한 40-50대 여성이셨음)
딱히 민망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투철하게 목적에 따라 속도를 줄이지 못 하고 매장에 성큼 들어서버린 게 아쉬웠다. 도리어 나보다 인생 (혹은 결혼도) 선배이실 그 분에게 '이 책이 아주 괜찮은 책'이라고 이야기를 못한 것이 퍽 아쉬웠다.
순간적으로 그 분은 내가 기혼자로 보였을까, 미혼자로 보였을까 궁금했다. 결혼학개론은 누구에게 필요한 책일까?
결혼학 개론
[타임] 매거진 커버스토리를 장식한 놀라운 이야기! 2020년 인터내셔널 북 어워드 ‘관계’ 부문 수상결혼은 미친 짓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행복한 결혼생활로 안내하는 과학적인 가이드 [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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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한 평생 약속, 결혼
1997년 IMF 사태는 한국인들에게 영원할 것 같던 평생 직장에 대한 개념을 사라지게 한 계기였다. 그 이후로 '평생'에 대한 개념은 점차 약해졌다. 그럼에도 '평생 약속'을 하는 제도가 하나 남아 있으니, 결혼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결혼에 대한 기대치가 높은 것이다. 부모님 세대 때와 동일한 평생 약속에 자신을 매어두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즉, 요즘 세대라는 이들은 기존 부모 세대와 다른 이유와 잣대를 가지고 결혼한다. 구체적인 눈높이는 사람마다 다를테지만, '익숙함'을 위해 결혼 하지 않는다. 적어도 '익숙함'만으로 살지 않겠다는 자세로 과거 통념 대비 결혼 자체가 기대치가 높다.
사실 난 여지껏 나만 그런 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대체로 또래들이 모두 결혼을 에버그린 주립대 역사학 교수 스테파니 쿤츠의 말처럼 '디저트'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평생 질리지 않는 디저트를 찾아 나선 모험가들이 되었다.
신혼이란 외다리 나무
수많은 부부들은 싸운다.
왜 볼수록 내 남편을 볼수록 화나는가에 대해 책 초반에 언급해 줄 때 도저히 웃음을 참지 못하고 결혼한 친구들과 사진으로 공유해야만 했다.
장점이 단점으로 돌변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바로 납득이 된다. 심지어 나는 첫 만남에 지금의 남편이 장점이자 단점이 같다는걸 눈치 챘는데도 신혼 초에 작은 일을 계기로도 엄청 크게 싸웠다.
신혼 초에는 서로 사랑 하는 사이라기 보다는 동물의 영역 싸움의 느낌으로 투닥거리는 일이 많았다. 연애를 꽤 하고 결혼 했음에도 '집'이라는 공간을 나누는 사이는 멀고도 험했다. 초장에 기세를 잡아야 한다는 유치한 조언을 들은 적도 없지만, 저절로 그런 태도를 서로 보였던 것 같다.
외나무다리에서 물러나지 못하겠다는 듯이 여유 없이 조급하게 싸우는 것이 신혼 초의 모습인 것 같다. 답이 한 쪽이 비켜주는 것만 있다고 생각이 들었었다. 그렇지만 시간을 들이면 같이 다리를 넓히면 그만이다.
너무 많은 차이점들
가끔 친정 어머니께서 말씀하신다.
"진짜 어쩜 네 아빠랑 똑같은 사위를 데려왔냐. "
아버지와 남편은 별로 안 비슷하지만, 가끔 단편적인 부분들이 소름돋게 비슷한 순간이 있기는 하다. 알뜰하게 물건 사는 걸 좋아하고, 과일을 엄청 좋아하는 것. 그외 무언가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고집이라고 할 만한 태도 정도?
배우자와의 트러블에는 개인과 개인이 찰싹 붙어있으면서 알게되는 그 모든 차이점에서 발생하는데도, 친구들과 지인들 간에 서로의 배우자와 있었던 일을 털어놓으면 그렇게 비슷하다.
저자 벨린다 루스콤은 그 많은 차이점들 중에 '돈, 육아, 아름다운 밤들(?!)' 에 대해 아주 꼼꼼히 써주었다. 마치 백과사전처럼 나에게 맞는 부분만 읽어도 될 것같은 부분들이다. 개인적인 견해로는, 3가지 모두 서로에게 솔직하게 가치관을 나누고 공유하는 것만이 답이라고 극도로 압축해본다. 라이프 스타일에 따라 상황에 따라 너무 달라질 수 있는 경우를 디테일하게 풀어낸 저자의 노력이 대단하다. 책을 안 좋아하는 미혼 친구에게 5장은 잡지 코스모폴리탄이나 다름 없다고 말해주면 읽힐 수 있을 것도 같다.
이렇게 축약해버리는 데에는, 이미 발견한 답이 너무 앞쪽에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위에 첨부한 사진에는 두가지 색으로 하이라이트를 했는데, 그중 다른 하나가 '결혼은 성장형 사고방식이 필요하다. '였다. 이 쯤 되면 지겨울 법도 하지만, 성장형 사고 방식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 같다. 책의 알맹이를 50쪽도 안되서 발견한 느낌이었다. 어떤 사람들이 '사람 바꿔쓰는거 아니다'라고 말하고는 하던데, 결혼은 한 팀이 되기 위해 배우자를 바꾸는게 아니라 '나부터 바뀌는 것이다. ' 에 가깝다는 이야기를 저자가 풀어서 이해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해주었다.
한 팀으로 노는 중
본인의 남편같은 기시감을 느끼신 친정 어머니께서는 결혼 전 우리 커플을 억지로 결혼 학교에 등록하셨다. 얼마 안되는 등록금이라지만 피같은 예비 장모님의 돈에 죄송해서 몇번인가를 참석했다.
비슷하게 예비 부부도 있었고, 정말 서로를 이해하고자 참 사랑의 힘으로 온 10년차 부부도 있었다. 여러 연사분의 강의와 서로의 경험담을 공유하면서 나만 겪는 문제가 아니라는 연대의식이 생기는 부분이나, 가볍게나마 공개적으로 당사자 앞에서 섭섭했거나 화났던 점을 말하니 감정이 해소되는 것도 보였다.
그래서 결혼학교가 나의 성공적인 도움닫기가 되었을까? 상대방을 칭찬해주기 발표 순서에 남편이 아주 능구렁이 같이 발표하는 바람에... 구애하는 공작새의 런웨이 아님 숫사자 갈기 뽐내기 대회라도 열린 줄 알았다. 그 전까지 모든 남자분들이 발표를 꺼려했다는 걸 잊어버릴 만큼 먼저 나서려고 손을 번쩍 들었고, 그 이후로 난 남편을 사기캐로 여기며 산다.
그 발표의 순간에 저 남자의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다라고 굳이 빨끈할 필요는 당연히 없었겠지만, 진짜 화가 나는 말을 지인들과의 모임에서 신랑이 했다 하더라도 연인에 대한 배려라 생각해서 불편한 기색도 비치지 않아야 할까 라는 짧은 상상을 했었다. 아마도 한 두번은 넘어가지 않을까? 부부라는 건 팀이니까.
서로의 관계가 진짜 어려울 때도 부부의 관계에는 누구나 도움을 요청하기도 받기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연애 관계에 훈수 두기도 조심스러운데, 하물며 부부 관계는 어떻겠나.
결혼 생활이 아름답게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혹시나 문제가 생겼을 때는 철저히 팀플레이 정신으로 바라보고 필요하다면 도움을 청하기로 정해본다. 내가 선택한 결혼이니 자책감에 빠진다든가 상대만의 탓을 하는 식의 감정의 골짜기를 파는 짓은 안 하는 게 현명하다. 일종의 자기 선언의 효과를 노리려 적어본다.
결혼할 때 (남편은 몰랐겠지만.. )
익숙함 대신에 '같이 논다'는 마음을 가졌던 것 같다.
진지하고 엄숙한 마음가짐으로 너무 길지도 모르는 여생을 함께하는 건 더 지치게 될지 모른다 싶었다. 누가 잘했네 못했네 기대치 가지고 싸우기 보다, 같이 놀면서 같이 크겠지라는 느긋한 마음이다.
이제는 아들과 아빠도 같이 자라는 중이다.
오늘은 서로 싸우고 화해하고 애정표현하다가 다시 싸우다가 내 앞에서 '한 번만 더 둘이 소리지르고 싸우면 둘이서 자라. '는 엄포를 듣고는 똑같은 표정으로 억울함을 한껏 내뿜었다. 난 조용히 소화제를 한 병 원샷했다.
둘에서 셋으로 늘어나니 팀플레이가 많이 삐걱거리긴 한다.
그래도 세 가족 안에, 둘이 한 팀으로 가야겠지.
더보기차라리 진짜 더 싸웠음 이 서평을 편하게 앉아서 썼을 것인데... 둘이 고집만 세고 눈치가 없었다. ㅋㅋ 아이를 재우고, 이불 뒤집어 쓰고 다크모드 건 핸드폰으로 쓰고 있으려니 귀신이 따로 없다. 아오 눈아파..
마무리하며..
우리는 늘 우리를 잘 모른다.
특히 연인 혹은 배우자를 대할 때의 나를 더 모르기도 한다.
결혼을 하려고 하는데 잘 하는 걸까 싶을 때,
이미 배우자가 있는데 거의 모든 대화가 화를 돋울때,
결혼을 안하는 게 더 좋은 선택일까 고민될 때,
(함부로 말하기엔 조심스럽지만) 어떤 종류든 이별을 결심했을 때에도
결혼이란 약속에 대해 고민될 때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비슷한 상황의 지인들과의 네버엔딩 대화보다 결론을 내려보고 싶다면, 정말 강력히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한 번 살 수 있는 인생 결국 누가 정해주지 않는다. 선택은 당신의 몫이지만, 잘 알고 하는 고민은 더 나은 선택지를 고르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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