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이상하게 속이 울렁거렸다. 이 책을 읽던 지하철 안에서는 꼭. 뭔가 잘 안될 것 같은 불안감이 스멀스멀 다가올 때처럼.
마음이란 얼마나 간사한지 책 속의 이야기를 읽는 것 만으로도 지하철 안 공기가 탁해진 것 같고 덜컹거림이 마치 바닥이 오르락 내리는 것 같았다. 내용 때문에 속이 미슥거린 거라기 보다는 마음챙김이 필요한 순간에 만나서 였던가보다. 눈치도 없이 '피곤해진 마음'과 같이 읽어나갔다.
이 책은 마음챙김을 직접 시도해볼 수 있도록 장마다 '금언 과 수행' 으로 잘 정리해준다. 금언 중 한개씩 골라 적기만 해도 11개 이상의 아름다운 조언이 남을 것이고, 아직 마음에 여유가 부족하다면 딱 한 문장 고르더라도 마음을 챙기는 노력에 성큼 다가설 수 있겠다.
뭐든지 실천하면 강화된다. (p.57)
이 문구는 마음챙김보다 자기계발용 스러운데도 그렇게 위로가 되었다. 마음을 달래는 것도 실천하면 강화할 수 있다니, 마음은 약해지기 쉽고 생채기 나기만한다 여겼지 강화시킬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나아가 우리는 긍정적 시냅스 연결을 생성하고 강화하면서, 다시 말해 뇌 구조를 건강한 방식으로 빚어내면서 허술한 경로를 쳐낸다. 과학자들은 이것을 '신경 가지치기 (neuronal pruning)' 라고 부른다.
뉴런 간의 연결이 늘어나면 흔히 머리가 좋아지고 더 똑똑해질거라 생각하지만, 허술한 경로는 제거해간다니 뇌는 선택과 집중에 익숙한 것 같다. 독서를 하면 할 수록 '앎'이란 모른다는 걸 알수록 강화되는 것 같다.
완벽함은 가능하지 않지만, 변화는 가능하다 (p. 62-63)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지만, 한 순간 거품이 터지듯이 마음이 바사삭 가라앉는 날이 생겼다. 그런 날이 많지는 않았지만, 귀가하면서 일의 여운이 씻기지 않는 날들이 버거웠다.
아마 나의 경우는 대단히 특별하지도 않은, 열심히 한다고 무언가 바뀌지 않는 것 같아 혼자 제풀에 지친 아주 흔한 이야기다. 그렇게 쉬운 일은 당연히 없는 줄 아는데도 지치는 지점이었던 것 같다. 결과가 실력에 비례하기도 어렵고, 노력에는 더욱 비례하지 않는데도 혼자 페이스 조절에 실패한 것 같다.
자기 계발(self-improvement) 에서 자기해방 (self-liberation)으로 마음가짐을 바꿔야 한다는 조언을 읽으면서 현재의 나보다 '5퍼센트만 더 하려고'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겠다고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이런 긍정적 신경가소성의 방점은, 뇌를 바꾸기에 너무 늦은 때란 없다.. 라는 사실이다. <폴리매스>에서 받았던 충격이 또 상기된다.
상황적으로 '직장에서의 마음챙김' (p.209) 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절대 잊어버릴 수 없는 에피소드 중 하나가 이 부분에 나온다.
최근 '직장'에서의 마음이 가장 불안한 것 같다. 아무래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 때문이기도 하고, 시간을 가장 많이 쓰고 있으니 무의식도 지배당하는 느낌이었다.
그러면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외부요인으로 변연계를 자극받으면, 이 고대 파충류의 뇌 영역은 내가 도마뱀처럼 꼬리를 자르고 도망가고 싶어지게 만든다. 일단 멈춤과 목격자로 자각하는 연습이 제일 필요해보인다. 멈춤까지만 잘 해도 큰 효과가 있겠다.
참고로 또 뇌리에 박힌 다른 일화도, 반응 대신 대응하면서 겪는 놀라운 경험에 대한 이야기였다.
특정 상황에 반응하는 것 외에도, 노력하지 않는 타인의 모습을 발견했을 때 너무 냉정한 편견을 쌓아왔던 스스로를 반성한다. 접할 수 있는 모습은 타인의 단면일텐데 쉽게 편견에 빠져서 특정 상황에 대응하지 못하고 즉각적으로 반응해왔다.
혹시 마음챙김이란 것에,
'나는 괜찮은데?', '난 멀쩡해. '라는 생각이 들어서 관심이 안 간다 하더라도 그 정도는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면 타인을 배려하는 태도라 생각하고 '반응보다 대응'을 하기를 바란다.
(p.128) 자존감이 멘탈 건강에 최고 가치로 인식하고 있었는데, 그 보다 든든하고 강력한 '자기 자비'가 있다는 걸 배웠다.
저자 샤우나 샤피로는 자존감은 자기 가치를 입증하는데 어떤 성과가 있어야 유지할 수 있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가치를 인정해주는 자기 자비를 찾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책에 나오는 이야기를 읽으면 한번씩은 느낀 감정, 상황들이 연상이 되었는데, 자기 자비는 시도 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스스로에게 엄격했던 기억도 없었는데, 자기 자비를 실천한 적도 없다니... 왜 이리 낯선 것일까 생각해 보았을 때, 건강한 멘탈을 가진다는 것을 높은 자존감과 동등하게 여긴 탓인 것 같다. 자기 자비와 자기 연민을 구별하지 못했기에, 부족하거나 지친 나를 토닥이지 않고 그저 더 해보라고 떠밀어온 것 같다. 응원이 필요하다고 느끼면서 내 안에서 찾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인정만 갈구한 느낌이다. 자기 자비를 강화할 수록 힘들 수록 다른 사람에게 베풀 수 있는 진정한 여유가 나온다는 점이 애덤 그랜트의 <기브앤테이크>에서의 '이기적 이타주의자'가 연상되었다.
"내가 넘어져야 한다면 넘어지게 하소서. 장차 내가 될 사람이 날 붙잡아 줄 테니. "
18세기 랍비, 바알 셈 토브 (p.142)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겠다는 바램은 막연하게 있었지만, 미래의 내 모습을 만들어 갈 때 '자기 자비'라는 큰 가이드라인을 따라갈 수 있겠다.
"안녕, 사랑해"
익숙하지 않지만, 책을 덮고 바로 해본건 "안녕, 사랑해"였다.
가끔은 직접 어깨를 토닥여주면서 '오늘은 진짜 불태웠다~ 고생했어' 라면서 스스로를 칭찬해주기도 했지만, 아침에 일어나면서부터 나에게 애정을 표현해본적은 없었다.
주말 아침에 아이랑 잠이 깨서 슬쩍 아이의 손을 심장 소리가 들리게 올려주고 이름을 부르며 "안녕, 사랑해" 해주었다. 영문을 모를 일인데도 엄마의 낯선 아침인사에도 싱긋 웃으면서 같이 따라한다.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비슷한 수행법을 힘들었던 시기에 시도해 보았을 때는 도무지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입밖으로는 내뱉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혼자 하기보다 어릴 때부터 익히게 해주고 싶은 엄마의 욕심이었는데, 스스럼 없이 자신에게 사랑해를 외치는 아이의 순수함이 더 부럽기도 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