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는 단순 완독에서 '서평'까지 쓰는 독서가로 넘어가기 위해 한없이 고요하게 바빴던 해였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나' 안에 담긴 모든 것
목차만 보더라도 우리를 이루는 모든 주제를 다루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블루드림스>를 읽고 서평을 쓰면서도 이미 '내가 나를 얼마나 아는가'에 대해서 한 번 좌절한 비스무레 한 상황에서 '거의 팩폭 종합편'이다.
매우 과학적으로 쓰인 책인데도 불구하고, 서점에서 찾을 때 '이렇게 '과학 일반'에 꽂혀있는 거야?'라고 궁시렁 거렸다. 취향, 습관에 정신과 신념 마저 과학자가 설명할 수 있다니, 이해하기 어려운 여러 후성유전학, 미생물학, 신경학 연구 내용에도 불구하고 읽고 나서 자아에 대해 나누어서 짚어보는 시간이 되었다.
기본적으로 유전자(1장, 창조주)에 의해 우리의 많은 것은 정해져 있다. 단지, 유전적으로 결정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단순하게 자녀는 산술적으로 부모 세대의 유전자를 반반 받는다는 오해를 하기에 좋다. 그러나 한 눈에 반해서 만났다고 생각했을 지 모를 커플도 충분히 본능적인 감지의 촉을 통해 상대를 골라왔고, 암수생식, 일부일처제, 의식적 노력의 유대감 등이 더해져서 인류가 현재 가장 번성하는 종이 되어왔다. (7장, 짝)
그렇지만 또 호모 사피엔스의 일상은 의식적 노력 따위는 하지 않는 것 같은 순간들도 무수하게 나타난다.
게가 엄마는 옆으로 걸어도, 아기 게에게는 앞으로 걸으라 한다는 농담 같은 속담도 있지만, 브로콜리를 안 먹으면서 아이들에게 강요하는 것보다는 같이 맛있게 캐러맬화 방법을 생객해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2장, 입맛) 재택이다, 온라인 수업이다 귀찮다며 정크 푸드를 즐겨 먹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운동을 바로 권하는 것은 부질 없을 것 같고 디톡스부터 시켜야 하겠다는 생각도 든다. (3장, 식욕) 우울감을 느끼는 사람의 이야기를 그저 들어줄 것이 아니라 장내 미생물총을 바꿀 수 있게 좋은 유산균을 같이 나누어 먹는 것도 방법일 수도 있다는 지혜를 배웠다. 우울감이 심각한 경우 식욕도 잃는 사람도 많으니, 대단한 지식이 아니여도 적절한 대처로 보이는데 전혀 생각을 못해봤다. (5장, 기분)
유전자는 환경적 요인에 의해서도 쉽게 변한다. 무려 비흡연자인 아버지가 길 가다 마신 담배연기조차 아버지의 유전자에 입혀져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다는 것이 환경적 요인은 물려받을 유전자 이상으로 중요하다. 기존에 담배와 같은 기호식품에 오히려 중독이 되어 있는 사람들의 보면 의지력의 문제가 제일 큰 게 아닌가라는 생각은 편협한 성격이었다는 걸 알았다. 유전적으로 중독에 취약한 상태일 수도 있지만, 심지어 부정적아동기의 경험이 얹어지면 스스로 중독에서 벗어나는 것은 어렵다는 걸 알았다. (4장, 중독) 또다른 과학자이자 <사이코패스 뇌과학자> 저자인 제임스 팰런의 이야기를 덧붙여 보자면, 사이코패스이거나 적어도 사이코패스와 불편할 정도로 많은 특성을 공유함을 보이는 뇌 스캔 사진의 주인공이 본인이란 걸 알게 되었다. 어두운 살인마들의 유전자를 물려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따뜻한 양육을 거친다면 법 없이 살 사람은 아니여도, 법에 저촉되지 않고 살도록 자라게 할 수 있다는 산 증인이 되어준다. 9.11 이후 출생아들 DNA 메틸화가 확인되는 사례만 보아도 '나는 누구에게도 피해주지 않아. 영향도 주지 않아. 세상과 상관없어. '라는 식의 태도는 지워야 함을 알 수 있다. 이미 우리 몸에 지난 역사 또는 사건들이 DNA에 남겨져 있다. (6장, 악마)
후성유전학은 부모가 물려주는 것이 유전자와 수저 뿐이 아니란 사실을 절실하게 깨우쳐준다. '수신제가평천하' 라는 명언은 가족 내에서 얼마나 나다움이 직접 영향 받는 곳인지 재차 확인하게 된다. 이미 물려준 유전자와 DNA의 메틸기들은 어쩔 수 없지만, 더이상 DNA에 흉터나지 않게 최선을 다하는 부모로 본보기가 되어야겠다. 그래야 그 다음 세대에 그나마 나은 유전자가 전달될테니.
'나'란, 무수한 양면성의 합
이 책을 읽으면서 늘 그렇듯 선입견이나 편견에 휩싸여있으면서 스스로를 잘 안다고 자만했다는 걸 느꼈다.
하나만 꼽자면, '출생 전에 테스토스테론의 수치가 높으면 넷째 손가락이 집게 손가락보다 길어진다. 많은 연구에서 넷째 손가락이 길수록 지배적 성격, 충동성, 공격성이 더 높아지는 상관 관계를 가진다' 고 하는 부분 (p.224)을 읽을 때 였다. '... 으음 그렇군. ' 하며 읽다가 무심코 본 내 손가락에 깜짝 놀랬다. (물론, 앞서 언급한 제임스 팰런 만큼은 아닐 꺼다. 무려 그 책의 첫 페이지인 Thanks to는 '나의 어두운 본성을 오래전에 깨달았음에도 나를 잘 자라도록 해준 나의 부모에게' 다. )
지배적, 충동, 공격성에서 그 어느 단어도 무관하다 생각해왔었다. 그런데 인식하자마자 주마등처럼 많은 장면이 흘러갔다. 심각하게 누구에게 위해를 가한 적은 없지만, 내가 전혀 3가지 요소와는 완전히 무관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고 인정했다. 누구나 양면성이 있고 있다고 알고 있었지만, 책 속의 이야기를 읽고 머릿속에 입력하면서 그저 아는 척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나를 '어떤 사람이다' 규정하는 것이 뇌에는 유리하겠지만 양면을 끊임없이 인지하려고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나다움을 찾는, 나를 위한 인정 투쟁은 올해도 ing형
목차만 훑어보아도 흥미진진한 내용들이 많았지만, 정신과 신념(각 8,9장)의 내용이 마음을 파고 들었다. 책을 읽은 시점이 2021년의 시작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연말까지 업무에 치여 새해의 계획을 완성을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고민의 크기가 잔뜩 커져서 '어떤 모습이고 싶은지'에 대한 생각이 침잠하고 있었다.
'가장 나다운게 무엇인가'를 고민하다 다른 사람들과 구분이 될 정도로 별나다 싶은 특징이 두 가지 생각났다. 첫째는 '자기 계발'에 꾸준히 빠져있다는 것과 두 번째는 '유전자의 다양성'을 위해 잘 살아남아야 겠다는 생각을 은연 중에 하고 있다는 점 같다.
이상하리만치 어렸을 때부터 '능력의 부재'에 대해 의식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무언가 모르는 것은 책이 다 해결해줄 거라고 생각해왔다. (문제는 독해력이 낮았고, 대입입시를 핑계로 독서율이 참 낮았다. ) 부끄럽게도 '자기 계발'에 빠져있기만 하고 발전이 부족해서 끊임 없이 외치는 것이 아닌가 싶기는 하다. 대학원에 진학해서 '능력 부족의 극치' 를 찍고 나니 엉뚱하게도 돈을 더 열심히 모으기 시작했다. 과학자로 성공할 수는 없는 능력치임을 인정하고 생계를 일단 해결해보고,
어느 정도 경제적 자유를 이루어서 무언가 과학과 관련된 분야에 다시 집중할 기회를 얻어보자는 구상이었다. 이제 와서 포장하면 '세이프티 마진'을 확보하겠다는 발상이었지만, 졸업하고 결혼하고 아이도 생기고 여전히 시간을 못 이기고 있다.
하지만, 대단한 성과를 내지 못하는 나를 있는 대로 돌아보고 할 수 있는 일에 다시 집중할 수 있게 되었고 덕분에 지금이 그 때보다는 아주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두번째는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유전자가 다양성을 추구해줄 텐데, 의식적으로 보태고 싶어한다는 점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실험실 후배들과 이야기 중에 '생명의 탄생'이야 말로 극히 여성만이 겪을 수 있는 아름답고 극히 어려운 실험이니, 능력 있는 여성들이 출산을 꼭 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늘어놓았다. 이런 대화가 지도교수님이 들으신 탓에 결혼 후 다산을 계획하냐는 질문도 받아버렸다. 워킹맘으로 살다보니 현실적인 여건이 너무 어려워서 반쯤 포기 하고 있었지만, 책을 읽다보니 다시 '둘까지는 조금 더 고민해야 하나' 라는 또 엉뚱한 생각으로 발전했다. 정작, 그 대화를 나눴던 후배들 중 절반은 출산은 고사하고, 미혼으로 열심히 일하고 있으니 안타깝다. 아직 나의 발전에 급급하지만, 아이 낳고 싶은 생각이 드는 나라가 되도록 언젠가는 기여하고 싶다.
이런 두가지 괴짜같은 생각을 합한 나는 2021년에도 스스로 인정해줄 만한 미래의 나를 향해 노력해가려 한다. 아무도 모르고 있었겠지만, 올해도 인정투쟁이 계속 되는 중이다.
롤모델을 만났다.
한 때, 모토가 '재미와 위트를 잃지 말자' 였다. 아마 대학원 생활이 좌절의 연속이었기에 일종의 주문 같은 것이었다.
이 책이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들'이라는 진지한 내용을 담았을 것 같은 제목 대비되게 특별한 점은 저자 빌 서리번의 위트 넘치는 비유와 코멘트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p. 253) 다음에 당신의 여자친구가 왜 자기와 사랑에 빠졌느냐고 물어보면, 그윽한 눈빛으로 마주보면서 세상에서 가장 섹세한 목소리고 귀에 대고 속삭여주자. "긍정적 동류교배 때문이지. "
(p. 389) 나는 언젠가 대중 과학서적을 쓰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일을 하는데 시간이 그렇게 오래 걸린 이유는 제러드 다이아몬드 교수님 때문이다. 출판 사인회에서 나는 그에게 내 포부에 대해 얘기했다. 그러자 그는 공감하는 눈빛으로 나를 지긋이 바라보며 이런 현명한 조언을 남겼다. "종신재직 교수 자리에 오를 때까지는 기다렸다가 쓰게. "
대중과학서를 쓰고 싶다는 쿨한 생각은 한 때 했었다. 하지만, 과연 책을 쓸수 있을까 싶었다. 이 책의 참고 문헌의 양만 봐도 알겠지만, 몇 편의 논문 초안 조차도 빨간줄이 그어지며 좌절했으니 비현실적 목표기는 했다. 일단 한 분야의 전문가부터 노려야 할 것 같다.
그나마 현실적인 일은 영어 공부를 더 해서 과학서를 번역을 하는 것이라 계속 하고 싶은 일의 리스트에 있어왔지만, 실천에 전혀 못 옮기고 있었다. 또 다시 '영어 공부'라고 대충 새해 계획에 쓸 것인가 고민할 때 이 책을 접했다. 덕분에 씽크ON에서 접하는 책 중 1권 이상 원서로 읽고 번역 연습도 해보는 것으로 구체화될 것 같다.
미래에 많은 현재의 직업이 사라질거라고 하지만, 번역은 원문이 같다고 해도 맥락에 맞게 번역자의 관점에 따라 절대로 같은 글이 나올 수 없기에 '번역가'는 계속 존재할 거라고 생각되는 직업이다. 현실은 생계형 과학자이지만, 좋은 대중과학서를 번역하는 사람의 나를 기분 좋게 그려본다.
나를 비롯해서 이 책을 읽는 독자들 모두가 더욱 나다움을 잃지 않고, 긍정적인 확장을 이루기 바란다.